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최고의 자원 ‘똥’ 함부로 버린다고? 이런 ‘변’이 있나!

동아시아 식량 생산 주역 배설물
서구 위생담론 영향 오염원 간주

하수 인프라 유지관리 고비용화
분뇨 활용 땐 환경·지역난관 해소

사람 똥으로 만든 숯 연료로 활용
코끼리 똥으로 술·종이 만들기도
신간 ‘똥의 인문학’의 저자들은 ‘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이자, 과학과 생태의 결합을 통해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 사진은 인도 거리에 있는 야외 화장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똥의 인문학/김성원, 박정수 외 6명/역사비평사/1만5000원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 바로 ‘싸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에서 배설물이 하는 역할을 널리 알리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찬사받아야 할 일”이라고 했을 정도. 그러나 배변의 영역은 깊숙한 사생활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도리어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똥은 금기어로 전락해 ‘대변’, ‘배변’, ‘용변’, ‘볼일’ 같은 점잖은 단어로 대체됐다.

신간 ‘똥의 인문학’은 삶과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위이지만 쉽사리 입밖으로 낼 수 없는 ‘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똥의 순환, 자원의 순환’이라는 주제로 고민해온 유니스트 사이언스월든 인문사회팀 집담회의 결과물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똥은 퇴비화를 거치며 자연의 시스템 속으로 돌아가는 물질이었다. 사이언스월든 인문사회팀은 끊어진 순환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정신분석·예술·미생물학·인류세·도시공학·변기공학 등의 여러 측면으로 똥에 대해 살폈다.

김성원, 박정수 외 6명/역사비평사/1만5000원

언제부터 똥은 금기가 됐을까. 전통시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똥거름은 훌륭한 자원이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비료였다. 인간의 똥이 다른 생명의 밥이 되고, 인간은 다시 그 생명을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했는데, 저자는 이를 ‘밥-똥 순환’이라 명명한다.

이 ‘밥-똥 순환’은 근대 서구의 위생담론이 도입되면서 자연스레 비천화된다. 비료로의 활용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각종 질병의 전염원 또는 오염원으로만 간주된 것이다. 다만 식민지 시기 농촌 소설에서는 위생담론의 영향에 따라 똥의 비천화를 인식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똥비료가 필요했던 상황을 절충하는 형태이다. ‘밥-똥 순환’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 심훈의 ‘상록수’가 대표적이다. 반면, 도시 소설들에서는 ‘똥’이라는 단어를 꺼리고 시야에서 차폐시켜야 할 것으로 인식한다. 요컨대 근대 미달의 상징으로 여긴다.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이상의 ‘권태’가 대표적이며, 이들 소설에서는 근대적 위생담론이 압도적이다.

이처럼 근대는 똥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한 시기이며, 엄격한 통치로 제도적으로 하수가 된 시기이기도 하다. 책은 똥오줌이 제도적으로 하수가 되어가면서 위생 수준과 공중 보건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강력한 제도화를 기초로 한 사회적 인식에 의해 똥오줌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여지가 막혀 버렸다고 말한다.

1960년대 인구가 급증하면서 인분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인분비료공장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인분비료를 적극 금지하는 정책으로 돌아선다. 이제 똥오줌 처리는 비료 생산의 문제가 아닌 도시위생의 문제이자 ‘과학의식’에 입각한 ‘문화민족’의 일이 되었다. 마침 화학비료공장도 많이 세워져서 똥의 쓸모가 점차 사라졌다.

결국 도시에서 배출된 똥오줌이 한강으로 직집 방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수처리장 설치가 급선무였다. 인분비료 방책은 소용이 없고 ‘물’에 의한 화학적 정화를 통해서 똥오줌을 처리하는 방책이 설계되고 진행됐다. 저자는 똥오줌의 사회적 지위가 변한 건 결국 국가가 인분비료의 위험성을 공중에 알리며 제도적으로 금지한 데서부터였다고 말한다.

책은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고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자원과 기술을 활용하며, 발생한 이익은 지역민에게 돌아가는 기술’(적정기술)로 분뇨를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똥오줌을 폐기의 대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비순환적 시스템이다. 더구나 점점 더 거대화되는 하수 인프라와 그것을 유지·관리·보수하는 데 과도한 비용이 들어간다. 저자는 이런 고비용 하수처리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일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똥(동물의 똥 포함)과 관련된 적정기술은 매우 다양하다고 설명한다. 배설물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난방 등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외에도 코끼리 똥으로는 술과 종이를, 소똥으로는 벽돌 등 건축용 자재와 화분·타일·의자·탁자 등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의 똥으로는 숯을 만들어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변기와 관련된 적정기술도 있다. 퇴비화 변기(일명 생태뒷간), 이동식 퇴비화 변기, 소각 장치와 필터가 장착된 야외 간이화장실, 진공화장실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기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현대 도시에 적용하는 데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도시 조건에 적정기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적정기술에 맞춰 도시를 바꾸자는 새로운 발상의 제안을 한다. 바로 생태도시다. 또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적정기술 정책을 펴나가서 성공한다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