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를 위해 채무를 변제한 자는 채무자에 대해 구상권을 가집니다. 또한 채권자를 대위해 자기권리에 의해 구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채권 및 담보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채권 일부를 변제한 자는 변제한 가액에 비례해 채권자와 함께 권리를 행사하게 됩니다.
그럼 회생절차가 개시된 채무자를 위한 변제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26조는 여럿이 각각 전부의 이행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경우(연대보증, 연대채무 등) 그 전원 또는 일부에 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때 다른 전부의 이행을 할 의무를 지는 자(이하 전부의무자)의 대위변제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경우 다른 전부의무자는 회생절차 개시 당시 아직 변제 등 전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구상권을 취득하기 전이더라도 '장래에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구상권'을 가진 자로서 채무자에 대한 회생절차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권자가 회생절차 개시 시 가지는 채권 전액에 관해 회생절차에 참가한 때에 다른 전부의무자는 참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채권자가 회생절차에 참가해 전부의무자가 회생절차에 참가할 수 없다면 자신의 변제 등으로 채권 전액이 소멸한 경우에 한해 전부의무자는 그 구상권의 범위 안에서 채권자가 가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채권의 일부라도 변제하면 그 변제한 가액에 비례해 채권자와 함께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대위변제와 다른 점입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회생절차에 참가해 다른 전부의무자가 자신 구상권의 범위 안에서 채권자가 가진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의 변제 등으로 채권 전액이 소멸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생절차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주주·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의 재산을 공정하게 환가·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입니다. 필연적으로 채권의 일부 또는 전부의 변경, 특히 주로 채권의 감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즉 채권자의 채권은 최종적으로 회생절차에서 인가된 회생계획에 따라 감액된 내용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전부의무자 중 일부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됐다면 다른 전부의무자가 회생절차에서 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변제해야 하는 채권 전액이란 기존 채권액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회생계획에 따라 변경된 채권액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선고되었습니다.
채권자 갑(甲)은행은 회생채무자인 피고(주채무자)의 회생절차에 자신이 가진 채권 전액으로 참가했습니다. 이후 피고에 대한 회생계획이 인가된 뒤 연대보증인인 원고가 갑은행에 ‘회생계획에 따라 감면되고 남은 피고의 채무액보다 많으나 연대보증 계약에 따른 채권자 갑은행의 원고에 대한 채권액보다 적은 금액’을 변제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회생계획에 따른 피고의 채무액을 전부 갚았다는 이유로 갑은행의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상 권리를 대신 행사하겠다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은 “원고의 대위변제로 채권자 갑은행의 채권 전액이 소멸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며 원고의 회생절차상 권리 행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쟁점이 연대보증인인 원고가 주채무자인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가 진행되던 중 채권자에게 ‘보증채무의 일부’를 변제했을 때 원고가 피고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변제자 대위에 따라 채권자의 회생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밝히면서 전부의무자 중 일부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됐다면 다른 전부의무자가 회생절차에서 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변제해야 하는 채권 전액이 기존 채권액임을 전제했습니다.
대법원은 “채무자회생법 제126조는 회생절차에서 채권자가 확실히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판시하면서 “여럿이 각각 전부 이행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경우 그 전원 또는 일부에 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다른 전부의무자의 변제 등으로 채권자의 채권 일부가 소멸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을 회생절차에서 채권자의 채권액에 반영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채권자는 회생절차 개시 당시의 채권 전액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반면, 일부 변제 등을 한 전부의무자는 회생절차에서 구상권이나 변제자대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의 결론이 옳다고 판단해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2021. 11. 11. 선고 2017다208423 판결)
이상과 같이 다른 전부의무자(연대보증인, 주채무자, 연대채무자 등)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채권자가 채권 전액에 관해 그 회생절차에 참가했다면 다른 전부의무자로서는 회생계획에 따라 채권자의 채권이 감액되었다고 하더라도 회생절차 개시 당시의 기존 채권 전액을 변제해야 채권자의 회생절차상 권리를 대위변제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상당한 금액을 들여 회생계획에 따라 감액된 채권, 즉 채권의 일부를 변제하고도 채권자의 권리를 대위행사 하지 못해 금전적인 손해를 볼 수 있으므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본인이 처한 상황이 채무자회생법 제126조에 해당하는지 따져 보신 뒤 변제 등의 행위를 하기 바랍니다.
정현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hyunjee.chung@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