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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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북한 집착이 불러온 무리한 종전선언

유엔제재 완화 주장, 안보 자해 행위
대북 저자세에 국민은 화병 날 지경
北, 핵 포기 없는 한 번영의 길 못 가
中의 핵우산 제공, 공론화해볼 만

동독과 서독이 1990년 10월 3일 분단 45년 만에 통일이 됐을 때 독일 국민은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아니라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가장 칭송했다. 26년 전 ‘비서 간첩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유가 뭘까. 통일 협상을 진두지휘한 콜보다 ‘접근을 통한 변화’를 기치로 동방정책을 추진해 독일 통일과 유럽 평화의 초석을 놓은 브란트의 공적에 더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브란트는 1972년 동독과 무력 사용 금지, 협력과 교류를 핵심 내용으로 한 기본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1973년 동·서독 유엔 동시 가입이라는 난제를 해결했다.

김환기 논설실장

동방정책은 기독민주당(CDU) 출신의 콜 총리에게 계승돼 통일의 결실을 낳는다. 콜은 브란트의 충고에 항상 귀를 열었다고 한다. 신뢰에 기반한 두 거두의 정치적 우정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동방정책의 성공은 우리 통일정책에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진보정권들이 남북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추진한 이유다.

문제는 동방정책의 의미를 왜곡했다는 점이다. 진보정권들은 동방정책의 무력 사용 금지와 협력 및 교류에 경도돼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지원에만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이는 브란트가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인권 탄압을 통일 후 처벌하기 위해 잘츠기터 중앙인권침해기록보관소 설립을 주도한 사실을 외면한 처사다. 동독 정치범들은 가혹행위를 당할 위험에 처하면 “잘츠기터에 알리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채찍은 없고 당근만 주는 진보정권들의 대북 정책은 동방정책의 보고 싶은 것만 본 확증편향의 산물이다. 더욱이 진보정권들은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 ‘퍼주기’에 바쁘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해도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마디 하자 곧바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든 건 한국이 자주국가가 맞는지 의심케 한다. “북한이 관계 개선을 간절히 원하는 한국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국민들은 화병이 날 지경이다. 국내총생산(GDP)이 우리의 50분의 1에 불과한 북한에게 이렇게 무시를 당해도 되는 건가.

대북 저자세와 북한 집착증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자 유엔 대북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유엔 대북 제재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를 막기 위한 안전판이다. 그걸 스스로 허무는 것은 안보 자해 행위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호응을 하는 건 우리 정부의 기대대로 비핵화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다.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 협조를 조건으로 우리 정부에게 미국을 설득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대북 제재 해제와 이중기준 및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시키라는 숙제를 내준 것으로 봐야 한다.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용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려는 북한의 ‘술수’에 넘어가선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국이 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보이콧 동참을 거부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임기가 5개월 남은 정권의 업적 만들기용 종전선언은 국가 안보가 아닌 정파 이익에만 기여할 뿐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련을 접기 바란다. 아울러 이제 북한의 도발-보상-협상의 악순환은 유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북한의 정상 국가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북한은 핵을 껴안고 있는 한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아 결코 번영의 길을 갈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을 안보의 최후 보루로 삼고 있듯이 중국과 북한에게 한·미 사례를 참고해보라고 설득해보는 건 어떨까. 북중우호조약을 강화하고 북한에게 핵우산을 보장해주는 방안 말이다.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자동적으로 중국이 참전하고 핵우산의 보호까지 받는다면 북한의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겠는가.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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