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0일 내년 주택 보유세 산정 때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당정은 또 1가구 1주택 고령자에 한해 종합부동산세 납부 한시 유예도 검토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가격 폭등 및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에 따라 올라간 세금과 건강보험료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대선용 일회성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가격 현실화 시행 당시 이 같은 우려에는 아랑곳하지 않다가 대선이 임박해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 선회에 ‘국민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공시가격 제도 개선 당정협의를 열고 관련 내용을 논의한 뒤 세금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에서 “2022년 공시가 변동으로 1주택을 보유한 서민, 중산층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재산세, 종부세, 건강보험료 등에 대해 제도별 완충 장치를 보강키로 했다”며 “당은 정부에 공시가 변동으로 1세대 1주택 실수요자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세심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으며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보완 대책을 준비키로 했다”고 말했다.
당정은 우선 내년도 보유세 산정 시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집값 상승으로 내년도 주택 공시가격이 급등하면 보유세도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면 세금에 변화가 없게 된다. 당정은 또 21일 비공개 협의회를 열고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및 종부세 개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정부에 종부세 납부 유예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검토를 촉구했다. 박 의장은 “1가구 1주택자 13만세대 중 고령자인 6만세대에 대해선 납부 유예 검토를 요청했다”며 “1세대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서 (세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당정이 3월 중에 방법을 찾고, 방안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에서는 대선을 이기기 위해 손바닥 뒤집듯 정책기조를 바꾸는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재산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후보는 선심을 얻기 위해 공시지가를 동결하고 재산세 자체를 동결한다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투기 이윤을 모두 흡수한다고 한다”며 “이 후보의 재산세에 대한 기본 입장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 후보와 알력을 빚었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와 달리 공시가 동결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 없이 사실상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다주택자만 대상으로 하는 제도와 일반 전체 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를 같이 볼 수 있겠느냐”며 “일관되게 1주택자에 대해서는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당정 논의에는 1세대 1주택자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을 낮출 다양한 방안이 담겨 있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조정하면 재산세나 종부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에도 영향을 미쳐 광범위한 세부담 완화 효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공시가 현실화’라는 대의명분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또 보유세 상한 제도와 고령자 종부세 납부 유예 제도는 법을 개정해야 하므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 유예는 제도 시행 1년밖에 안 돼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모든 대안을 다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민심 눈치 보다 또 정책 번복… 野 “조삼모사 땜질 처방”
여당이 20일 재산세 및 공시가격 동결을 핵심으로 하는 규제완화책을 꺼내 들었다.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부동산 민심의 향배가 정권재창출 여부를 가를 결정적 요인이라는 판단에서다. 4·7 재보궐선거 참패라는 악몽이 재연될 것을 두려워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정책만큼은 문재인 대통령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하려는 모습이다. 선거를 위해 부동산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날 나온 공시가 등 동결 구상과 이재명 대선후보의 국토보유세 도입 공약이 상충한다는 지적이 야권에서 제기됨에 따라 여당의 부동산정책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되풀이되는 정책 뒤집기를 두고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다.
이날 당정협의 결과는 ‘공시가 현실화는 계속 추진하되, 공시가 상승에 따른 1세대 1주택 실수요자의 각종 세 부담을 줄일 완충장치 마련’으로 요약된다. 즉 공시가와 실거래가 간 벌어진 격차를 줄여가는 ‘공시가 현실화’ 작업은 속도조절 없이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다만 공시가 상승으로 인해 투기와 거리가 먼 실수요자가 부담해야 할 재산세(보유세, 종합부동산세) 및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것을 세율조정 등 수단으로 막겠다는 것이 여당의 구상이다.
이달 23일 표준주택공시가 발표에 이어 대선이 열리는 내년 3월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공시가가 공개된다. 그간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서울·수도권 집값이 폭등한 점을 감안하면 1세대 1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의 공시가는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세 부담도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권심판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수성전’을 치러야 하는 민주당으로선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은 재산세, 건보료 부담 증가, 복지수급 탈락 등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며 공시가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수행해선 안 된다”며 “국민이 원하고 국민행복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야권으로부터 연일 제기되는 ‘말 바꾸기’ 지적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선대위 디지털대전환위원장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방향은 맞지만 너무 급진적으로 추진됐다”며 이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그러나 규제 일변도 부동산정책을 옹호해온 여당이 대선이 임박해 급격히 방향을 트는 건 결국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저하하고 포퓰리즘 정책 양산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당정협의 연다더니 고작 조삼모사 땜질 처방이 전부인가”라며 “대선이 눈앞에 닥치자 민주당이 급하게 사후약방문을 써 내렸다”고 말했다. 또 “내년 보유세에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면 내후년 보유세에는 내년 공시가격을 적용한다는 얘기인가”라며 “민심부터 달래고 선거가 끝난 내후년에 한꺼번에 세금폭탄을 때리겠다는 건가”라고 몰아세웠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조세정책은 사회 근간정책”이라며 “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부 정책을 대선후보가 됐단 이유만으로 기둥뿌리째 흔들어도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보유세 경감, 일시적 세금 유예 중장기 집값 안정 효과 없을 것”
더불어민주당이 1가구 1주택자 보유세 경감 등 부동산세 완화에 나선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난 표심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정치권의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수표 남발’이 시장에 혼란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이 20일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등에 합의한 것은 표면적으론 집값 급등에 따른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업계에선 대선을 앞둔 민주당이 표심을 노리고 ‘일회성’ 세부담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유예, 종합부동산세 ‘핀셋’ 완화, 부동산 공시가격 정책 전면 재검토 등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뒤집는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양도세 중과 유예 문제에 ‘원칙 훼손’이라면서도 재산세와 종부세 일부 완화에는 보조를 맞추며 사실상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부동산 정책 공수표는 비단 여당의 문제만은 아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내세운 청년주택 30만가구 공약은 택지확보 자체가 힘들고 설사 숫자를 채우더라도 수요자가 원하는 곳에 공급하기가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우선 이번 1가구 1주택자 보유세 경감이 집값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보유세 경감은 일시적 세금 완화 정책”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집값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지난 4월 보궐선거 때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일시 완화 얘기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대선이 점차 다가오며 부동산 관련 정책들이 쏟아지겠지만 당장 신뢰를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선심성 부동산 공약이 시장에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대로 전년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할 거면 정책으로 매년 전년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해야지 ‘한시적’이라는 단서를 달면 일관성이 없는 정책이 된다”며 “그때그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자꾸 조세제도를 변경하다 보니 난수표가 되고 시장에 혼란만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의) 속도 조절을 하고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이고 형평에 맞는 부동산 관련 조세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