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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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국정의 큰 그림을 보여 달라”

정략적인 후보 단일화 감동 못 줘
미래 선점할 정책 연대 틀 내놓아야

내게 가장 극적인 대통령 선거는 2002년 제16대 대선이었다. 비주류 노무현이 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도, 지지율 급락 후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로 기사회생했다가 선거 전날 단일화 파기 사태를 맞고 그 다음날 당선되기까지 드라마틱했다. 노·정 단일화가 깨진 건 권력 분담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국정원장을 비롯해 외교·안보 분야 몫을 구두로라도 보장해달라는 정몽준 측 요구를 끝내 노무현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선거 전날 합동 유세에서 “(차기 주자로) 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다”는 노 후보 발언은 다음을 노리던 정몽준 진영에 폭탄을 터뜨린 격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과의 ‘DJP 연합’으로 제15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후보 단일화는 일종의 선거 공식이 됐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권력을 통째로 얻는 승자독식 선거에서 세력이 아쉬운 쪽은 단일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비록 그 끝이 아름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내각제 개헌 약속이 물 건너가고 대북 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커지면서 DJP 연합은 정부 출범 3년여 만에 깨졌다. 서로 생각과 계산이 달랐던 노·정은 애당초 손을 잡을 만한 파트너가 아니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상호 불신만 남긴 채 선거 실패로 끝났다.

황정미 편집인

선거를 70여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다투고 있다. 연일 행사장을 찾고 정책 공약을 발표하지만 ‘가족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시간만 축내는 실정이다. 양 후보 모두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건 ‘누구든 우리 편’이라는 노골적인 호객 행위다. 국토보유세, 기본소득 같은 대표 공약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적 유예, 재산세 동결 등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을 뒤집는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혼란과 불안만 키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얄팍하게 표를 구하는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라고 못박았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실용주의”라는 ‘윤석열정부’는 지향점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

두 후보가 장군멍군식 인사 영입 경쟁을 하는 와중에 김성식 전 의원이 던진 화두는 그런 면에서 참신했다. 이쪽, 저쪽 영입을 거절한 그는 SNS에 “나 같은 사람에게 연락하기보다는 다른 정치 세력과 잠재적인 국정의 인재들을 향해 자신들의 국정운영 그림부터 좀 크게 그려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라고 썼다. ‘(영입하는) 사람의 이미지만 따먹는 정치’가 아니라 정책 연합이든, 연립 내각이든 연정(聯政·연합정치)에 대한 고민을 내놓으라는 주문이다. 김 전 의원 개인의 정치 성향을 떠나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다. 사상 유례없는 ‘비호감 대선’을 반전시키고 실패가 예약된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을 위해서도 연정 공론화는 필요하다.

밀실 협상을 통해 한쪽 손을 들어주는 선거공학적 후보 단일화는 더 이상 감동적이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4∼5%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 후보에 들러리를 서라고 압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치 세력 간 연대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이유다. 차기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국정 무게를 감안하면 명분은 차고 넘친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수습과 심각한 양극화 완화, 미·중 신냉전 구도에서의 외교·경제안보 구축, 4차 산업혁명 동력 확보,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대책 등 대한민국 미래를 바꿔놓을 사안들이다.

이 같은 미래 어젠다를 놓고 정책 연대 세력을 크게 그리는 쪽이 선거에도, 나라에도 유익하다. 연합정치가 일상화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국민, 국가 이익을 위해 타협하는 정치를 실용주의라고 했다. 그의 긴 정치인생을 지탱해준 특성은 ‘참을성’이었다. 함께 할 명분을 만들고 자신의 권력을 나누는 일은 리더만이 할 수 있다. 정책 연대 파트너를 설득하는 일 못지않게 핵심 지지층을 설득하는 책임 또한 리더의 몫이다. 귀를 막고 싶은 네거티브 공세와 떴다방식 공약 남발로 허비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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