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누구예요? 고려가 북진정책을 했다는데….”
2학년 때 엄마를 따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팜꽝 응히야(가명)가 5학년 때였다. 장난을 치며 친구들과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 협상’을 꽤 잘하는 아이였다. 한국인 친구도 여럿 있었고, 베트남 아이들과 가장 잘 어울렸지만 우즈베키스탄 친구와도 죽이 잘 맞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몽골 친구와 한국어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면 말대답하는 데도 능숙했다. 외국인 말투가 발음으로 남아 있지만 일상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 고려의 정체를 질문한 것이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응히야의 엄마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담임교사와 정기적으로 상담을 했다. 응히야의 한국어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다소 안도하는 상황이었다. 응히야의 엄마는 베트남 식당을 열었고, 당시 장사가 잘되어 한국인 아빠까지 식당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어 가정에서 학교 공부를 도와주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며 사회과 수업을 꼬박꼬박 들었는데도 ‘고려의 북진정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진정책 이런 말 어려워요. 사회적 환경, 공공기관, 기후, 기후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발해는 뭐예요?”
응히야는 기말시험 준비를 하면서 ‘어려워’를 연발했다. 응히야는 베트남어를 제1언어(즉, 모국어)로 습득한 후 3년간 한국어를 제2언어로 학습한 이민자녀의 언어발달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춘기를 외국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어린 학습자는 언어를 쉽게 배우고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발음 측면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으나 언어학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민의 역사가 긴 유럽이나 미주지역에는 제2언어 발달에 대한 연구가 많다. 캐나다 학자 제임스 커민스는 언어 구사력을 BICS(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on Skills)와 CALP(Cognitive Academic Language Proficiency)로 분류했다. BICS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언어 구사력을 뜻하는 반면, CALP는 학문이나 고차원적 인지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언어능력을 말한다. 더하여 커민스는 기본언어 구사력을 갖추기 위해 2~3년이 소요되는 반면 학습언어 구사력은 5~8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9년 이상이 걸린다는 결과를 제시한 연구자도 있다.
아마 응히야는 베트남어를 익힌 후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 기본 한국어 구사력을 갖추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 ‘북진정책’ ‘사회적 환경’ ‘공공기관’ ‘기후’ ‘기후대’와 ‘발해’의 개념을 바탕으로 기말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학습 한국어 구사력을 갖추지는 못했던 것이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라 중도입국 학생들이 한국어 발음을 익히기도 어려워졌고,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상호작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어의 개념어는 유럽문화를 번역하며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를 이해해야 하니 더욱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응히야와 한국어 교사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