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면서도 슬퍼서 ‘웃프다’. 밀레니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 ‘현실은 시궁창’이었던 자조세대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자조세대의 ‘웃픈’ 정서 그대로를 예술로 승화한 청년 예술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구미술관 ‘유머랜드 주식회사’다.
대구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으레 개인전이나 연합전 형식으로 열리던 청년 작가 전시 ‘Y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주제전으로 기획해 선보였다.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요즘 청년 세대 특유의 유머를 주제로 삼았다. 김영규, 이승희, 이준용, 장종완, 최수진 30대 작가 5명이 사회와 예술의 면면을 젊은 감각과 유머로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도 청년 예술가로서 마주하는 사회적 현실을 말하는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띈다. 오직 그들만이 말할 수 있는 진짜 현실 이야기여서다.
김영규 작가는 인터넷 강의 형식을 차용해 미술, 자본, 개인의 관계에 대해 보여준다. ‘아트페어 작가로 살아남기’, ‘연봉 1억 미술작가 되기’, ‘성공한 예술가 욕 안 먹고 살아가기’ 등으로 미술작가가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성공을 얻는 방법에 대해 강의한다. 영상작품 ‘미술왕 인강시리즈 - 연봉 1억 미술작가 되는 법 책 발간’ 등에서 작가가 직접 족집게 1타 강사처럼 변신해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작품으로서 만든 책 ‘연봉 1억 미술작가 되는 법’에는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던 천기누설’ 등 풍자적 부제를 단 표지가 눈길을 끌고, 마음껏 펼쳐보고 만져볼 수 있는 책 형태의 예술작품이라 신선하다. 책에서는 가령 노골적으로 잘 팔리는 그림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며, ‘잘 팔리는 주제’와 ‘안 팔리는 주제’를 정리해준다. 잘 팔리는 주제로 자연, 약간의 우울한 감성, 어린시절의 기억, 처절한 청춘에 대한 응원, 왠지 한국적인 것 등을 꼽는다. 반대로 안 팔리는 주제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적인 것, 계몽주의적인 것, 지나치게 철학적인 것, 과거의 잘못 등을 써내려간다. 사유하고 성찰하게 하는 미술이 아니라,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미술을 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의 작품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웃음이 나지만, 미술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여러 공들인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각인되는 작품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종이에 붓으로 건성건성 몇자 적은 듯한 이준용 작가의 작품이다. ‘천천히 미술을 그만 둔다’라는 열 글자가 점점 엷어지는 수채화 물감으로 적혀 있다. 이 작가는 이 작품을 자신의 학교 졸업작품전에 내놓았다는 설명에 관람객의 마음은 더욱 ‘철렁’ 하고 떨어진다. ‘미술’이라는 단어 자리에 자신의 업을 넣다 보면, 꿈과 현실의 괴리, 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의 업의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청년 예술가로서의 실존적 고민 외에도 작가들은 다양한 고민들을 유머러스하게, 또는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펼쳐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합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행태 등을 특유의 감각으로 꼬집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접하며 웃게 하면서도 어느 작품보다 처절하고 직설적으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