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아토피로 고생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섰죠.”
대기업 반도체 집적회로(IC) 설계 전문가였던 한창희 지파워 대표는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2004년부터 아토피의 원인인 피부장벽 기능 손상을 집에서 간편히 검사할 수 있는 장치 개발에 나섰다.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1년에 400만원 넘는 수준의 여러 보습제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 얼마나 처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막막했던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한 대표는 2016년 세계 최초로 손쉽게 피부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피부장벽 측정기 ‘지피스킨베리어’의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판로 개척과 업무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이듬해 그는 서울시와 존슨앤드존슨이 공동으로 주최한 창업대회인 ‘이노베이션 퀵파이어챌린지’에 선정됐다. 지파워는 이를 통해 홍릉 서울바이오단지 입주기회와 7500만원의 상금, 존슨앤드존슨과 협업 기회 등을 얻었다.
기업은 지난해 누적수출 119만달러를 달성한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 44개국에 있는 글로벌 화장품 업체 ‘키엘’ 매장에 피부측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대표는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글로벌 기업과 컬래버해 제품을 키울 수 있는 비즈니스적인 연결이 중요하다”며 “존슨앤드존슨과 협업은 그런 면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누적 매출 300억원 돌파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동대문구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입주기업의 연매출은 최근 3년 새 2배 넘게 성장했다. 2019년 서울바이오허브가 홍릉에 처음 들어선 뒤 65억원 수준이었던 입주업체의 매출은 지난해 134억원, 올해는 121억원을 기록해 누적 320억원 수준의 성과를 거뒀다. 현재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에는 지파워를 비롯한 121개사가 입주해있다.
서울시는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입주기업 간 협력과 규제특례, 재정지원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 분야의 전 세계적인 성장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서울을 바이오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글로벌 바이오산업 규모가 2019년 10조7000억 달러 수준에서 2026년 16조1000억 달러 규모로 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시장의 1.5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입주기업에 컨설팅부터 교육, 연구장비 구축 및 이용, 국내외 네트워크 활성화 등을 지원한다. 현재까지 666명이 창업지원 상담을 위해 이곳을 찾았고 1968명을 대상으로 한 바이오 전문·실무교육이 이뤄졌다. 고용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홍릉 바이오·의료 클러스터에는 2019년 206명, 지난해 290명, 올해 316명으로 총 812명의 신규고용이 이뤄졌다. 창업 멘토링 프로그램과 글로벌 컬래버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업체들이 유치한 투자규모도 총 226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기업과 협업 중요한 바이오산업
바이오산업은 대표적인 기술·자본 집약 산업으로 글로벌 기업 같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약 개발을 하는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이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은 스타트업으로 유망한 후보물질 기술을 이전받거나 공공연구를 통해 신약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더욱 빠르게 수익을 창출하고 해외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를 위해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같은 글로벌 기업과 정기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휴먼스케이프는 지난해 서울시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 노바티스가 공동으로 주최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인 ‘헬스엑스챌린지’에 선발돼 노바티스의 디지털 혁신연구소인 ‘노바티스 바이옴’과 협업에 나선 성공 사례다. 휴먼스케이프는 난치성질환별 정보를 제공하는 앱 ‘레어노트’와 임신·육아 플랫폼인 ‘마미톡’을 통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노바티스와 마미톡 서비스를 활용해 척추성 근위축증 질환에 대한 인지도를 제고하는 캠페인을 추진하는 중이다.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는 “헬스케어 생태계 내 미충족 수요를 포착하고 이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국내에서 쌓은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글로벌 협력동 준공해 해외 진출 확대할 것”
시는 글로벌 바이오혁신 전문가들과 스타트업 간 교류의 장을 넓히기 위해 지난 10월 ‘서울 바이오의료 콘퍼런스’를 열었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전환)을 통한 바이오의료산업 혁신’을 주제로 기업들이 산업에 대한 최신 동향 정보를 얻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시는 창업 10년 이내 중소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인허가 절차 및 품질관리 시스템에 대한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이 해외 진출을 할 때 필요한 외국어 IR코칭, 영문 기술문서 작성 등도 지원한다.
시 관계자는 “내년에는 ‘서울바이오허브 글로벌 협력동’을 준공해 성장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특화시설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바이오 기업과 추가적인 협력 프로그램을 발굴해 창업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