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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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민주주의를 묻는다

정치언어 모호하면 공동체 난망
尹, 민주주의 관련 발언 논란 빚어
李, 포퓰리즘 성향이 우려 낳아
정치 입문 때의 초심 돌아보길

민주주의는 ‘시민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유권자들이 미리 정해둔 시기에 법을 제정하고 국가를 운영할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며 그 권리는 동등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러한 원칙에 개인의 자유라는 원칙이 덧붙여진 자유주의적인 체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여기서 국민주권과 개인 자유라는 두 자율권의 관계는 상호 제한적이다. 불가리아 출신 철학자 츠베탄 토도로프는 저서 ‘민주주의 내부의 적’에서 “민주주의 체제는 복합적인 배치를 이루기 위해 서로 결합하는 여러 특징들의 총체로 정의된다. 이 특징들은 완전히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기원과 지향성이 상이한 까닭에 서로를 제한하며 상호 균형을 이룬다”고 했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민주주의에서 더 큰 신뢰가 가능한 것은 단지 전능함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실패의 결과가 덜 극단적이기 때문”(‘민주주의’)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행동의 기본 조건인 상호 신뢰를 민주주의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 활성화를 기대하는 이유다.

박완규 논설위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민주주의 관련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공식 사과한 허위 이력 의혹보다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더 큰 문제다. 아직 검사 티를 벗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윤 후보는 23일 전남지역 선대위 출범식에서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게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하는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 온 그런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과 같은 길을 걸은 것”이라고 했다. 수입된 이념에 대해선 남미의 종속이론, 주사파 주체사상을 언급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논리다. 앞서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조수진 의원이 갈등을 벌인 데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느냐”고 했다. 상임선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은 이 대표는 “굉장히 당황했다. 이 상황이 제대로 전달됐다면 민주주의 영역에서 평가될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데도 윤 후보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며 한발 물러났다. 울산 회동으로 선대위 인선 갈등을 봉합한 지 3주도 안 돼 판이 뒤집어졌고 사태 수습은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윤 후보는 22일 전북대 간담회에서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 아니라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 극빈층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학자 박상훈이 “현대 민주주의는 그 탄생에서부터 노동과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 하층의 배제에 반대하는 정치 언어였다”(‘민주주의의 재발견’)고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강제가 아닌 말의 힘을 통해 실현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정치 언어가 모호하다면 그런 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윤 후보의 민주주의 관련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윤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논리적인 정책적 개념보다 여론에 더 호소하는 포퓰리즘 성향이 다분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이번 대선이 비루한 선거라고 폄하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닌 유권자들의 존재마저 부인해선 안 된다. 이들은 내년 3월9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다. 대선후보가 민주주의를 아무 데나 함부로 구겨 박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토대인 견제와 균형, 사회통합, 의회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정치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돌아보길 바란다.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