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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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그린 딜, 원전, 정의로운 전환, 사회적 양극화 ① [더 나은 세계, SDGs]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홈페이지에 속 그린 딜 소개 자료

 

유럽연합(EU)은 원자력발전 및 액화천연가스(LNG)의 그린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 포함 여부 결정을 내년 1월로 미뤘다.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될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적인 이목이 쏠린 이슈였다. 

 

만약 원전과 LNG가 녹색(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된다면 2019년 12월11일 발표된 EU 그린 딜(기후대응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로드맵·European Green Deal)에 따라 두 산업은 향후 지속가능금융의 혜택과 제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린 딜의 이행을 위해 막대한 예산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예산 및 투자 프로그램인 ‘인베스트(Invest) EU’를 통해 1조유로(약 1346조 6800억원) 규모의 그린 딜 투자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린 택소노미에서 친환경으로 분류된 산업은 이 예산에 포함된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U 그린 택소노미를 통한 원전의 친환경 분류 여부는 단지 예산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에너지 산업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많은 국가에서 이번 발표를 주목해왔다. 한국 등 원전 산업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는 물론이고 관련 산업에 대한 자금 투자를 준비하는 수많은 기관(자산 운용사, 연·기금, 기관 투자자)과 녹색채권 발행을 준비하는 기업 및 정부, 공공기관도 향후 에너지 정책을 가늠하면서 가장 앞서가는 EU의 결정을 주시해왔다.

 

EU의 이번 결정은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영국 서식스대와 독일 국제경영대학원(ISM)은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원전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가 이뤄지면 재생 에너지의 기후변화대응 능력과 이득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중립의 핵심으로 일컫어지는 재생 에너지 산업의 향방도 이번 발표에 달려있는 셈이다.

 

현재 EU 내 국가들의 재생 및 그 외 에너지의 비중은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생 에너지는 34.6%를 차지하고 있고, 원전은 25.5%, LNG는 21.7%, 석탄은 18.2%이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봐도 내년 1월로 미뤄지게 됐지만 어떤 식으로든 발표하게 될 원전 및 LNG의 녹색 분류 여부가 EU 산업계와 회원국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EU 내 관련국 입장은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유럽 내 원전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친환경 분류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는 독일은 폐기물의 위험성을 주장하면서 탈원전 기조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전체적인 여론은 원전의 녹색 분류에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다. 찬성 측 국가인 프랑스와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핀란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슬로바티아, 슬로베니아가 반대 측 독일,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페인, 아일랜드보다 숫자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 지지자(Shadow Supporters)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장 원전 및 LNG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이를 시작으로 과탄소 산업에 종사하는 일자리 수백만개가 사라질 위기도 유리한 정황이다. 이 같은 우려는 EU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심화되고 있는 유럽 내 사회적 양극화가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탓이다.

 

물론 EU가 그린 딜과 더불어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EU 내 지역 및 산업 지원책인 1000억유로(약 134조3740억원)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체계’(JTM·Just Transition Mechanism)를 발표한 바 있지만, 원전 배제에 따른 정치·경제적으로 미치는 여파까지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역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EU에서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나면 당장 지난 10월 공개된 환경부의 ‘한국형 택소노미 및 적용 가이드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형 택소노미에 따르면 태양광·풍력·수력과 LNG 발전, 친환경 자동차 제조를 포함한 모두 61개 산업 분야가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된다. 반면 원전과 원자력을 이용한 수소 생산 등 관련 내용은 모두 배제됐다.

 

친환경으로 가는 길에 동반하는 불편함과 희생은 지구환경과 탄소중립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전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사회적 양극화와 경 제안정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는 명제다. 그린 딜이 ‘지속 가능한 EU 경제를 위한 로드맵’이라고 불리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1월에 발표될 EU의 원전 및 LNG 녹색 분류 여부는 이러한 명제를 반영하길 희망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 지위 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