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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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세이의 차이…‘골때녀’ 사태로 본 리얼리티 예능 고찰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SBS ‘골때리는 그녀들’ 캡처

 

SBS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논란’이 아니다. 지난 22일 방송분에서 제작진은 시즌1 참가팀인 FC 구척장신과 시즌2 신생 참가팀 FC 원더우먼의 시즌2 리그 첫경기의 전체 최종 스코어(6:3)는 그대로 둔 채 경기 순서를 바꿔 편집한 뒤 이를 방송으로 내보냈다.

 

방송이 나간 직후 전반전이 끝나고도 두 팀 진영의 위치가 바뀌지 않은 점, 제작진의 실제 스코어를 적은 스케치북 노출 등에 의구심을 품은 누리꾼들의 댓글이 올라왔고, 이에 제작진은 실제 경기에서는 구척장신이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선제골을 넣어 5:0까지 진행되었고, 이후 원더우먼이 3골을 만회하고 추가 실점한 끝에 최종 6:3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승부 조작은 없었지만 프로그램의 흐름상 편집 순서를 바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에 많은 시청자는 모처럼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예능 프로를 두고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약 8명의 글벗님과 1년 넘게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 중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팀이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거나 개인 저서를 쓰기 위해 반을 옮기신 분을 제외하고는 큰 변동이 없다. 이들은 각자 쓰고 싶은 주제를 선정해서 그에 맞게 날마다 조금씩 글을 쓰고 이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한주에 한번씩 화상 줌(zoom)으로 만나 서로 글을 나누고, 나는 전문가적인 시점(?)으로 정성스런 피드백을 하고 있다.

 

지난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데, 주변 사례까지 추가해서 소설적인 구성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일단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대 안 된다. 소설과 에세이는 다르다. 완전 다른 장르다. 소설은 에세이가 될 수 없고, 에세이는 소설이 될 수 없다.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꾸민 이야기 즉, 허구를 가미한 장르이지만 에세이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양식(네이버 지식백과 참조)을 일컫는다.

 

두 장르의 개념적 차이는 ‘허구’와 ‘비허구’라는데 있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에세이는 비허구 즉, 리얼한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세이 작가들 사이에 풍문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에세이 3권을 쓰면 “영혼이 다 털린다”는 말이다.

 

이는 영혼까지 다 털릴 만큼 자신의 온갖 생각과 경험을 다 내어놓고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내 이야기를 쓰기는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설이 쉽고 에세이는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고, 에세이는 쉽고 소설은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두 장르의 현격한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능 골때녀에 분노하는 이유는 하나다. 스포츠 정신을 훼손했다는 1차적인 지적도 나오겠지만 시청자에게 이토록 사랑받았던 ‘리얼리티 예능’이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예능은 문학으로 치면 에세이와 같다. 우리는 그들의 성장 스토리에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공에 온몸을 맞아 멍투성이인 무릎을 보며 마치 내 동생인 것처럼 마음 아팠고, 한여름 땡볕 아래 땀을 온몸에서 흘리며 공을 차는 그녀들의 진심을 응원했다.

 

축구의 ‘축’자도 몰랐던 그녀들이 축구공 하나로 울고 웃으며 서로 알아가고, 자신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대리만족 및 힐링을 했던 눈물과 웃음이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에 시청자는 상처받았다.

 

방송 프로그램은 다양한 편집기술(자막, 반복재생, 빠른 화면, 느린 화면처리, 음향효과 등)을 통해 시청자에게 더 진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효과편집 기술 등이 매일 매일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리얼리티라는 것은 편집의 분야가 결코 아니다.

 

소설과 에세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그러하듯 말이다.

 

우리는 소설 골때녀를 원한 것이 아닌 에세이 골때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이윤영(작가,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