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장편 ‘달까지 가자’ 장류진 “기술적 계산 아닌, 제가 좋아하는 방식 스타일로 쓸 뿐”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재민

아이씨, 누가 백만원만 주면 좋겠다! 지난달 월급은 동나버리고 이번 달 월급이 들어오기 직전, 이십대의 직장인이었던 그는 열흘 남짓한 그 기간 거의 매분 매초 그 생각을 했다. 삼십대가 돼서 오래 만난 연인과 둘이 살 신혼집을 구할 때에는 또 이런 생각을 달고 다녔으니. 누가 일억만 주면 좋겠다! 고.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용꿈, 피꿈, 똥꿈, 조상님이 나오는 영험한 꿈을 꾸고 나면 로또를 사곤 했다. 추첨을 기다리면서, 그는 생각했다. 아, 3억만 되면 좋겠다! 그 돈만 있으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최적의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또 당첨이 되지 못하고 대신 소설가가 되자, 그는 누가 큰돈을 주는 얘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해와 친구들에게 3억씩 나눠주는 이야기를. 소설가라는 직업의 장점은 키보드와 모니터만 있으면 어떤 이야기든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잖아. 어차피 소설이라 내 마음대로 줄 수 있으니.

 

“그렇다면 돈을 어떻게 줄까. 2017년, 가상화폐 제1차 붐이 있었지요. TV에선 특집 다큐나 찬반 토론을 하고, 모자이크 처리한 사람들이 나왔어요. 이상하게, 그 얘기만 나오면 멈춰서 보곤 했지요. 사람들의 반응이라든지 (존버, 떡상, 가즈아~ 등등) 그런 말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머리속에 세게 남아 있었죠. 큰돈을 주는 소설을 생각하다가 비트코인으로 주는 것으로 해볼까, 아냐, 비트코인은 너무 뻔하니까 이더리움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흙수저 직장 여성 3인의 코인열차 탑승기’로 부를 만한, 우리 사회 가상화폐 문제와 직장인들의 일상과 우정을 빼어난 현실감각으로 그려낸,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론제과의 다해는 은상 언니가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언니의 권유로 투자에 나서 매일 ‘가즈아~’ ‘떡상(상한가 도달)’ ‘달까지 가자’를 외친다. 주식은 실체가 있지만 가상화폐는 실체가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던 지송마저 제주 여행 이후 동참한다. 가상화폐는 한때 ‘떡락’하지만 다시 오르면서 ‘존버’했던 그들 모두 돈을 벌게 되는데.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98쪽)

 

그리하여, 작품은 “사회의 풍속도를 유머러스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서술”(한영인 평론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료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6위에, 최근 편집자와 마케터 등 출판인 60인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소설’조사에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출간 하루만에 4쇄를 찍어야 할 정도로 베스트셀러도 됐다.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이 무려 10만부가 팔린 데 이어 ‘멀티골’을 터뜨린 셈이다.

 

장류진과 그의 소설은 어떻게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을까. 그의 소설과 문장에는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 낮에는 비교적 포근했던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장편 『달까지 가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출판사에서 장편을 쓰자고 해서 계약했는데, 장편은 써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큰일 났다고 걱정했다. 그러다가 누가 큰돈을 주는 얘기를 소설로 써보자고 생각했고, 그러면 돈을 어떻게 줄까, 하다가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주자고 생각한 거다. 또 하나는 차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나오는데, 각자 자기의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으로 생각해봤다. 큰돈을 번 세 사람이 각자 외제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세 사람이 여자라면 또 어떨까. 이더리움으로 큰돈을 벌어서 차를 타는 모습을 쓰자, 해서 나온 것이다.”

 

―가상화폐 투자 모습이 리얼한데, 실제 가상화폐나 주식투자를 한 것인가.

 

“제가 직접 하진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구체적으로 썼다니, 대단하다) 제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건 아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책에 나오는 가상화폐의 시세 흐름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 2017년 이더리움 시세를 날짜별로 엑셀 스프레트에 적어 넣고, 세 인물별로 칼럼도 만들어 각자 얼마를 넣고 얼마를 파는 등 수식을 걸어서 1년 치 차트를 만들었다. 특정 시기에 어떤 이슈가 있어 폭락을 했고, 어떤 이슈가 있어서 올라갔는지 표시를 한 뒤 그래프에 이야기를 맞췄다.”

 

―큰돈을 번 뒤 퇴사하고 건물을 산 은상, 몇 억을 벌어 사업을 구상하는 지송, 전셋집을 꿈꾸며 우선 회사를 다녀보기로 한 다해, 이들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알 수는 없다. 현재는 소설보다도 몇 년 후다. 확실한 건, 은상 언니는 건물주가 돼서 떵떵거리고 잘 살 것 같다. 지송은 약간 소설 안에 넣어놓은 게 있다. 2017년에는 흑당 밀크티가 큰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후 흑당 붐이 일었기에 사업은 대박이 났을 것이다. 다해는, 은상 언니의 말을 듣고 집을 샀어야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사지 않는 걸 후회하고 있겠죠(웃음).”

 

―첫 장편인데.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장편을 처음 써서 책으로 낸다고 하니까, 부담스러웠고 걱정이 많았는데, 쓰다보니까 써 지더라. 첫 경험이었지만, 이렇게 하면 장편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걸 경험해서 좋았다. (단편과 차이가 있었을 텐데) 절대적인 양의 차이가 있기에, 작품 안에서 구성하거나 다루는 데 있어서 좀더 복잡하다고 해야 하나. 앞뒤와 중간 설정을 맞춘다든지, 소설 구성을 한다든지, 그런 것들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쓰고 나니까 그만큼 뿌듯하고 재미가 컸다.”

 

2018년 출간된 그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취업준비생부터 시작해, 첫 출근, 직장 초년병 생활, 결혼, 주택 구입 등 보통 직장인들의 희노애락이 리얼하게 담겨 있다. 소설가 정이현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고 평한 이유다. 첫 소설집은 ‘출판 불황기’에 이례적으로 10만부가 팔려 최근 특별한정판이 출간됐다. 작품들은 TV드라마로 제작 방영되거나, 연극으로 각색돼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단편 「탐페레 공항」은 우연히 퇴근길 지하철에서 핀란드산 자일리톨 껌을 씹게 되면서 6년 전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추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공항에서 만나 소소한 인연을 쌓은 핀란드 노인 얀은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지만, 화자는 바쁜 일상 속에서 답신을 보내지 못한다. 식품회사 회계팀에 취직한 그는 피디 채용공고에 응모하려다가 후회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불현 듯 노인의 일을 떠올리고 여러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 소설은 어떤 계기로 썼는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 하나는 2008년 대학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핀란드에 갔다. 다녀오면 취직을 해야 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경제상황도 어려워지고 취직도 어려워질 때여서 걱정이 많았다. 아름답고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마음속에는 금융 위기인데 돌아가서 취직을 어떻게 하지, 풍경과 다르게 현실에 대한 생각이 계속 충돌한 감정이 녹아났던 것 같다.”

 

―취준생의 마음이나, 꿈과 삶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의미 있는 삶이고, 그렇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밥벌이로 일하면 불행한 삶이라는 패러다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해서 살아가진 않는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밥벌이를 위해서 자기 삶을 책임지는 것인데, 그렇게 좋지 않게만 생각할 수 없지 않을까. 동네에 빵집이 하나 있는데, 주인이 예전에 유명한 밴드였나 보더라. 가게에 밴드를 했던 시절의 사진이 쫙 걸려 있다. 카페 사장이 카페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걸어놓는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 원래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지금 딴 일을 하는 그런 얘기, 꿈은 있지만 꿈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 그런 이야기나 서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의 원형이 아닐까. 실제 소설에서도 화자가 이력서를 다운받지만, 질문을 보고 여러 감정이 휩싸여서 통화를 한 뒤, 이력서를 쓰는 게 아니라 편지를 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고 싶은 일 자체에 대한 뭉클함도 가지고 있지만.”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은 더운 여름 날 정규직 직장에 추가합격으로 첫 출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경쾌하게 그린 엽편소설이다.

 

―이력서를 이렇게 많이 썼는지, 첫 출근할 때 이런 느낌이었는지.

 

“(실제 쓴 이력서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그 정도로 쓴 것 같다(웃음). 지금은 IT업계가 인기이지만, 스마트폰이 아닌 거의 피쳐폰을 쓰던, 제가 졸업하던 때만 해도 지금처럼 축하 받으며 취업하는 곳은 아니었다. 되다 돼다 하다가 간 것이다. 그럼에도 정규직으로 취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더라.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채용에서 많이 떨어졌으며, 경제 상황도 안좋았으니까. 꿈꾸던 일과 상관없이 좋았다. 정규직 첫 출근 때의 기쁜 마음이 들어가 있던 것 같다.”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중고거래 앱 ‘우동마켓’을 운용하는 스타트업 직장인 안나의 이야기다. 그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문제의 거래빈발 고객 ‘거북이알’을 만났다가 대표에게 찍혀 포인트로 월급을 받는 그의 웃픈 사연을 듣게 되는데.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나왔나.

 

“다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이력서를 쓰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던 2018년 초, 이 작품을 썼다. 내가 할 일, 일할 공간, 만나게 될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게 됐다. (여러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회사에선 포인트로 월급을 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많은 이야기들은 대체로 잊어버리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것도 있다. 그는 그만 뒀을까, 먹고살려고 어떻게 했을까, 문뜩문뜩 이런 생각을 하던 게 들어갔다. 판교에 소설에 나온 것과 비슷하게 건널 수 없는 육교가 있는데, 거기를 지나갈 때마다 다른 사원증을 건 두 사람이 위로 올라가 둘러보는 장면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있다가 결합돼 하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소설 습작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았는데, 2017년 초 막상 직장을 그만두니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100만큼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퍼센트 부족한 게 있었다. 그게 일의 기쁨이 아닐까. 첫 번째는 월급이다. 또 돈을 빼고서라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더라. 돈을 벌고 있을 때 에너지, 긍정적인 기운, 자기 삶을 꾸려 나간다는 자존감 등이 있는 것 같더라.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람을 만나기 꺼려지더라. 아울러 출근, 퇴근 등의 루틴을 주고 사회적 관계도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억지로 꾸역꾸역 출근해서 영혼 없이 일하더라도 어쨌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고, 그것을 누군가는 사용하고 싶어한다. 그런 게 노동의 기쁨이 아닐까. 소설에서도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안나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지만, 어쨌든 앱이 만들어져 거북이알은 그것으로 어려움을 해결한다. 반대로 거북이알은 자존심 버려가면서 공연을 기획하는데, 안나는 그 공연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그러면 일의 슬픔은) 그 외는 모두 일의 슬픔이다(웃음).”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둘러싼 직장인들의 이야기다. 5년째 회사원 화자는 결혼을 앞두고 빛나 언니와 식사까지 하며 청첩장을 전달하지만, 언니는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 화가 난 주인공은 언니의 결혼식 때 선물과 편지만 보내지만 언니는 감격해 하고 축하떡까지 보내준다.

―주인공은 빛나 언니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는가.

 

“주인공은 결혼식에 가지 않고 선물만 줬지만, 빛나 언니는 떡을 보내준 것이다. (마지막엔 빛나 언니를 응원하는 듯한데) 화자는 세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받은 만큼만 선물로 돌려주기로 하고 카드에 성의 없이 ‘십년 뒤에 우리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라고 적는다. 하지만 빛나 언니는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카톡에 올린다. 화자는 나중에 그것을 보고, 자기가 쓴 글이지만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런 사람이 10년 뒤에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반대로 자신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단편 「도움의 손길」은 백화점 직원인 화자가 신도시에 28평 아파트를 구입한 뒤 도우미를 불러 청소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묘한 주제를 담고 있다.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이 있는데.

 

“일인칭 화자 입장에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누구는 백퍼센트 잘못했고 누구는 백퍼센트 잘한 그런 것은 없다. 다들 조금씩 잘못하는 것이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이상하다고 하지만, 화자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연회비가 아까워서 등록을 안했고, 자기 맘대로 창틀 청소도 만원이겠지 하면서 챙기는 척 했으며, 격주로 부르는 것도 자기 돈을 아끼려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지막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한 방 날리는 구도를 만들었다. 언젠가 어떤 정치인이 자신의 비서관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그 정치인은 티브이에 나와서 자신과 비서가 하는 역할이 다를 뿐 인격이 다른 건 아니다고 해명하더라. 처음엔 맞는 말인 것 같았는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 정말 그럴까. 인격은 같고 역할만 다른 것이라면, 의원과 비서관의 역할을 바꾸면 누가 좋아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말함으로써 덜어지는 자신의 계급에 대한 부채감과, 올라가는 비서관의 인격 중에 뭐가 클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소설이 나왔다.”

 

―단편과 장편 작품들이 독자를 포획해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올까.

 

“그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기 난감하다. 기술적으로 요렇게 해야지, 라고 생각해서 쓴 것이 아니다. 저도 모르게 쓰게 되는, 제 스타일 같다. 계산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읽었을 때 좋아하는 방식으로 쓰서 그런 것 같다.”

 

이와 관련, 독자인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허영일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읽으면서 덜컹거리는 곳이 없다. 자기 글을 열심히 퇴고했고, 율격도 고려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글을 단문으로 쓰면서 문장과 문장, 서로 연관성을 세밀하게 배치했다. 인과관계에 설득력이 있어서 가독성이 좋다는 얘기”라고 적었다.

 

장류진은 독서의 개념이 없던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활자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밥 먹으며 신문을 볼 정도로. 어른이 돼서도 책읽기를 좋아했다. 문학을 읽고 좋아했지만, 문학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자각은 없었다. 그냥 책읽기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문학책만 읽는 건 아니니까.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졸업 후 판교의 IT 회사에서 7년 이상 일한 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수료했다.

 

―어떻게 문학의 세계,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인가.

 

“대학에 진학해서도 문학을 좋아했지만 역시 문학을 좋아해, 라는 자각은 없었다. 취직을 한 뒤 처음 여가 시간이나 주말이라는 게 생기니까, 한국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많이 읽게 됐다. 어,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몰랐네. 그때가 2010, 11년쯤이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그때서야 소설이라는 카테고리를 인지하면서 깊이 좋아하게 됐다. 소설을 많이 읽던 시기,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시기에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대학 4년 내내 글을 쓰면서 쓰는 걸 좋아했는데, IT 기업에 취업하니까 쓸 일이 없더라. 뭐라도 쓰고 싶은데, 쓰지 못했다. 그 시기에 소설쓰기 강좌에 꽂혔다. 처음에는 일회적으로 등록해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들었다. 그러면서 문학의 세계로 들어왔다.”

 

등단 이후 그는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2018)을,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2021) 등을 차례로 펴냈다. 심훈문학대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7년 넘게 판교의 IT회사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일하면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많다. IT업계 자체가 책이랑 크게 관련 없는 분야여서 생소하다보니 독특하게 봐주더라.”

 

―지금은 전업 작가인데, 글쓰기 루틴이 변했나.

 

“회사에 다닐 때는 무언가 루틴을 가질 수 없었다. 그냥 짬나면 썼고, 시간이 생기면 썼다. 그나마 단편 소설이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계속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장편 소설은 긴 호흡으로 써야하기에 닥치는 대로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했다. 규칙적으로 써야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일어나서 아침 먹고 첫 일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배고파질 때까지 쓰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엔 쉬었다. (생산성은 높아졌는지) 그런 것 같다.”

 

―특별한 글쓰기 리추얼 같은 게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쓴다. 오후에 쓰면 집중이 잘 안되더라. 집필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집에서 쓰는데, 집을 나가지 않더라도 샤워하고, 로션을 새로 바르고, 옷도 갈아입고, 커피를 내리고, 빵 같은 것을 놓고 먹어가면서 배고파질 때까지 쓴다.”

ⓒ유재욱

―작가로서의 비전이나 꿈은.

 

“그런 게 없다. 마감을 잘 지키고, 약속을 잘 지키는 작가가 되고 싶다. 책 계약을 많이 해놓은 편인데,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건 제가 소설을 꾸준히 부지런히 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팬데믹 2년째인 2021년 마지막 문학면 기사를 뭔가 다르게 준비하고 싶었다. 기자 맘대로의 올해의 작가나 올해의 소설을 정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기자의 무지나 시의성 문제, 출판사나 작가 사정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챙기지 못한, 인연을 맺지 못한 소설이나 작가를 챙겨주자고. 작가나 평단의 분석도 살짝 들여다보고, 서점가의 평가도 주마가편으로 일람했으며, 서랍장 속 문학책들도 휙 하고 둘러보니, 대략 대여섯 명의 작가와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 속에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가 있었다. 책을 읽고, 그를 만났다. 많이 늦어서 미안, 그럼에도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났으니 용서를. 참, 장류진 소설은 어땠냐고요? 글쎄요, 괜찮았어요. 평가가 너무 시시하다고요? 음, 그럼 장류진 식으로 말해 볼께요. 음, 괜찮은 한권이었어!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장류진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