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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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9일 대선 최대 승부처는 ‘MZ 세대’

전문가 “밀레니얼 세대, 기존 정치 논리 통하지 않는 새 국면 맞았다”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 뉴스1 자료사진

 

한국 정치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헌정 최초의 30대 야당 대표가 탄생하고, 평생 강성보수 외길을 고집했던 5선 의원은 청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제2의 정치 인생을 그리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586세대가 군림하던 대한민국 정치지형에 'MZ세대(2030세대)'라는 신흥세력이 등장했다.

 

MZ세대는 정치 문법까지 바꿔놓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2030세대의 표심을 얻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당 후보가 가상공간에서 비대면 유세를 하고, 야당 후보가 빨간색 후드티를 입고 번화가를 찾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은 청년들이 결정한다'는 구호는 이제 선언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뉴스1에 따르면 MZ세대는 '집단화'를 통해 정치세력으로 거듭났다. 2030세대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집단 투표하면서 정치적 파급력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20대는 56.4%, 30대는 61.1%가 민주당에 몰표를 줬다. 특유의 분산투표 성향 탓에 선거철마다 주변인 취급을 받았던 청년세대가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세대는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세력화를 본격화했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55.3%, 30대 56.5%가 야당인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오 후보는 총 득표율 57.50%로 박영선 민주당 후보(39.18%)를 18.32%포인트(p) 격차로 꺾고 압승했다. 1년 전 집권 여당에 몰표를 줬던 2030세대가 이번에는 야당 후보로 표심을 바꾸면서 선거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MZ세대 신드롬은 2021년 한해 내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재보선 두 달 뒤인 6월11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 교섭단체 당 대표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출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의정활동 경험이 전무한 0선의 청년을 제1야당 대표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MZ세대의 폭발적인 지지율이었다. 급기야 국민의힘 열성 당원들도 '이준석 돌풍'에 휩쓸리면서 당심이 민심을 따라가는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MZ세대는 대선정국에서도 이변을 일으켰다. 대선 경선이 한창이었던 2021년 9월, 2040세대 11만여 명이 국민의힘에 입당 러시를 하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6월 전당대회 이전 4개월과 비교하면 20대 당원은 8배, 30대 당원은 7.5배 폭증했다. 보수정당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경선에서 '무야홍 신드롬'을 일으키며 청년층의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본경선에서 탈락 후 2030세대 정치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을 만들어 독자노선을 구축하고 있다.

 

정치권은 MZ세대가 차세대 주류 정치집단으로 입지를 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0년 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던 안철수 신드롬은 특정 정치인이 정치적 이상향을 제시하고 2030세대의 지지를 끌어내는 업 다운(Up-down)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2030세대가 거꾸로 특정 정당과 후보를 밀어 올려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보텀 업(Bottom-up)으로 정치 참여 방식이 180도 달라졌다.

 

한 정치학자는 "586세대는 1980년대 군사정권의 독재에 반발해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계층이라면, MZ세대는 2000년대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에서 오는 절망감으로 정치적 투쟁을 시작한 계층"이라며 "586세대가 40년간 향유했던 주류 세력 지위를 MZ세대가 교체하는 전환기 국면에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청년층 상반기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7.2로 2015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3월9일 대선의 최대 승부처도 'MZ세대'다. 지난 연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 역전 현상'을 불러왔던 세대는 청년층이었다. 2030세대 표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은 20%대로 주저앉았고, 이 후보는 오차범위 밖에서 야당 후보를 앞지르며 판세를 뒤집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업체 4개사가 지난달 27~29일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재명 39%, 윤석열 28%를 기록해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11%p까지 벌어졌다. 여야 대선 후보 확정 후 NBS 조사 이래 이 후보는 최고치, 윤 후보는 최저치 지지율이다.

 

주목할 점은 '연령별 지지율'의 변화다. 20대는 이재명 26%-윤석열 10%를 기록했으며, 30대는 이재명 42%-윤석열 18%였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직후 NBS 조사(11월2주차)에서 20대는 이재명 24%-윤석열 22%를, 30대는 이재명 35%-윤석열 28%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청년층이 등을 돌리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한 셈이다.

 

여야는 대선 막판까지 청년층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표심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윤 후보에게서 이탈한 젊은 세대가 이 후보가 아닌 제3지대 후보나 무당층으로 빠진 점은 2030세대가 쉽사리 표심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치의 근간을 이념·지역 중심에서 민생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는 총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대 연구의 대가인 독일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주류 유권자 세대가 공유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권의 사고와 구조가 변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586세대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이념과 사상, 인권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대를 살았다. 반면 MZ세대는 초개인화된 사회를 살고 대의명분보다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회의 불공정에 분노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김대중 정부까지는 호남이냐, 영남이냐로 갈리는 지역 논리가 노무현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는 보수와 진보로 표가 나뉘는 이념 선거가 통했지만 밀레니얼 세대에 들어서는 기존 정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새 국면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배 소장은 "MZ세대는 정책적 완결성을 평가하는 기성 정치권에는 낯선 정치집단이다. 경청·공감·적용 단계를 거치지 않는 설익은 정책으로는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