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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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황폐화 시킨 세상… 인간 존엄성 다뤄”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순항 이끈 배두나·공유 화상인터뷰

자극적 할리우드식 전개와 달리
절제와 탈색 바탕으로 서사 풀어
오염된 가치 정화할 필요성 지적

호불호 예상… 한국 SF 새 장 열어
환경오염 등 인문학적 관점 제시
식수 찾아서 달로 가는 아이러니

대가뭄으로 황폐화된 미래, 오염된 식수 탓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섯 살을 채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 우주항공국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특수 임무를 개시한다. 대장 한윤재(공유 분), 우주생물학자(배두나 분) 등 정예 대원들은 ‘월수’(月水)를 찾으러 달 연구기지 ‘발해’로 떠나지만, 의문의 적을 맞닥뜨리며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달을 소재로 한 SF스릴러를 표방해 주목을 받은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가 고요히 순항 중이다. 4일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이 작품은 넷플릭스 TV쇼 부문 5위로, 공개 이후 순위권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상당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마냥 기뻐하긴 어려운 모양새다. 앞서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돌풍으로 당초 기대가 높았던 데다 엉성한 연출과 진부한 클리셰, 단조로운 사건 전개, 과학적 오류 등의 혹평도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들 역시 담담한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화상으로 각각 만난 주연 배우 배두나와 공유는 장르 특성상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말하는 한편 이 작품이 주는 고요한 여백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였다.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까 호불호가 갈릴 거라 예상했습니다. 장르도 다르고 작품은 각기 갖고 있는 고유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부담감을 가져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작품의 결과를 절대적인 수치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요의 바다’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SF 장르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줬고, 훌륭한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공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고요의 바다’의 주연 배우 배두나.

“감독님의 단편을 보니 왜 이렇게 시나리오에 여백이 많은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여백이 있는 시나리오 자체를 좋아합니다. 요즘 자극적인 것으로 초반 1회에서 시선을 잡고 가는 작품들이 많은데 저희는 그 공식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배우의 눈을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고,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드라마이지 외부에서 파도치는 작품이 아닙니다.”(배두나)

배우들의 말처럼 이 작품은 강렬하고 빠른 호흡이나 할리우드의 서사 전개 방식과는 다르다. 영화 ‘인터스텔라’ ‘마션’ ‘그래비티’ 같은 시각적 효과나 긴박함은 다소 떨어지지만 절제와 탈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물’을 통해 오염된 인류의 가치를 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공유의 말대로 인문학적 접근이 더 중요한 드라마다. 공유는 “SF라는 장르가 붙어버리니까 기존 할리우드에서 접해왔던 기준치들이 있는 것 같다”며 “‘고요의 바다’는 인문학적 작품이라 더 좋았다. 식수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달에서 물로 하여금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러니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사적인 부분과 인문학적인 부분으로 접근한다면 세계관을 감상하시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두나도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 얘기하는 작품”이라면서 “제가 나서서 ‘환경을 지킵시다’라고 하는 것보다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이 작품은 두 배우의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배두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펑펑 쓰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이런 것이 콘텐츠가 가지는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유 역시 “과연 인류는 비윤리적이더라도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나, 금단의 열매를 딸 것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이 됐다”며 “환경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술과 과학의 발달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를 시작한 뒤에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지 않게 됐다”며 “댓글로 한 팬 분이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얘길 하시는 걸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배우 공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연기가 힘들진 않았을까. 공유는 “근미래 설정이기 때문에 과거에 봐왔던 우주복에 비해 경량화돼 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처음 접했을 때는 꽤 무게가 나간다고 느껴졌다”며 “헬멧을 쓰면 산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초반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배우보다 액션이 많아 우주복을 입기 편하게 제작했지만 액션을 하는 데 있어 가동 범위 제한도 있을뿐더러 컨트롤 하기 쉽지 않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배두나는 “촬영 초반에는 ‘살다 살다 우주복까지 입어보는구나’ 하며 희열을 느꼈다. 정말 감사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달의 지면에서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었다. 헬멧을 쓰면 소리가 안 들리기 때문에 감독의 지시나 다른 배우의 대사만 들리는 이어폰을 쓰고 촬영했다. 그러면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 드는데, 오히려 더 달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웃어보였다.

두 배우 모두 함께한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공을 돌리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제작자로 참여한 배우 정우성에게는 “본인이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현장에서 어떤 게 불편할지 너무 잘 알고 있고, 권위적이지 않고 열려있는 태도를 보여줘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극찬을 보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