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 2022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해가 될 전망이다. 한국 미술 주요 거장들의 의미있는 해를 기리는 특별전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9월에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개최 미술장터가 열려 국내외 미술계 시선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재조명된 작가들을 한 명씩 집중하는 전시들도 개막해 ‘초특급 기증’의 여파도 꾸준히 이어질 듯하다.
◆거장들을 기념하는 해
2022년은 백남준(1932∼2006) 탄생 90주년이 되는 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기념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오는 11월부터 ‘백남준 효과’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에 설치돼 있으나 장막 속에서 오랜 수리, 정비를 해 온 백남준 대표작 ‘다다익선’도 재가동할 예정이다.
한국 근대 조각 거장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 특별전도 올해 기대되는 전시다.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으로부터 작품을 대거 기증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소문본관에서 오는 3월 특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광주시립미술관도 오는 7월부터 10월까지 ‘권진규 탄생 100주년기념전:예술적 산보’를 계획했다.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에서 상당량의 판화가 포함돼 시선이 집중됐던 단색화 작가 유영국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도 생긴다. 국제갤러리 서울점이 올해 유영국(1916∼2002) 작고 20주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제목으로 오는 6월부터 석달간 열리며, 유영국의 대표작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력을 돌아보고 기념할 예정이다.
근대 미술 애호가들에게 성원을 받아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오는 7월부터 약 석달간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펼친다. 문신(1922∼1995)은 유영국, 박고석, 한묵 등과 함께 국전 참가를 거부하고 모던아트협회에서 표현주의적인 회화작업을 선보이다가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가 조각으로 작품 범위를 넓혀온 미술가다. 이번 100주년 기념전에서 문신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종합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미술관·갤러리들이 소개하는 국내외 작가
미술관과 주요 갤러리들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해외작가 개인전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을 소개하려는 계획이 풍성하다.
삼성 리움미술관은 오는 3월부터 미국 작가 이안 쳉의 첫 아시아 개인전을 연다. AI(인공지능)와 게임엔진, 인터렉티브 기술을 적극 활용해 세계 미술계 주목을 받아온 작가라는 설명이다. 스스로 진화하는 디지털 생명체를 예술작품으로 창조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한국 작가로는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제전을 통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온 중견작가 강서경 개인전을 4월부터 열 예정이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주요 작가로 참여한 태국 출신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국제갤러리를 통해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갤러리현대는 오는 3월 유럽에서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온 독일 여성작가 사빈모리츠 전시를 아시아 최초로 준비 중이며, 5월 이승택, 10월 강익중 개인전을 펼친다.
대구미술관은 7월부터 12월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개념미술 거장 다니엘 뷔렌을 소개하고, 광주시립미술관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구자 요나스 메카스를 소개한다. 오는 11월부터 ‘친애하는 나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요나스 메카스를 포함해 백남준과 플럭서스 운동까지 조망하는 전시가 될 전망이다.
국제갤러리 서울점이 다음달부터 여는 단색화 작가 하종현의 대규모 개인전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대표작인 ‘접합’ 연작을 비롯해 신작인 ‘후기 접합’ 연작을 국내 최초로 공개해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국제갤러리가 9월에 계획 중인 알렉산더 칼더(1898∼1976)와 국내 대표 단색화 거장 이우환의 작업세계를 특별전 형식으로 함께 소개하는 2인전도 기대된다. 20세기를 대변하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두 혁신가들의 작업을 통해 장르를 불문한 대가들의 추상세계를 조명한다는 구상이다.
학고재 갤러리의 올해 첫 대형 기획전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도 시선이 집중될 전시다. 한국 추상회화의 역사를 되짚고 잊힌 작가들의 올바른 위상을 재조명한다는 의도로 마련된 자리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전시에서 높은 인기를 끈 류경채(1920∼1995)를 비롯해 이봉상(1916∼1970), 강용운(1921∼2006), 이상욱(1923∼1988), 천병근(1928∼1987), 하인두(1930∼1989), 이남규(1931∼1993) 7명의 작품 총 70여점이 나온다.
◆프리즈 최초 개최 등 미술계 격변
다가오는 9월은 올해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한국 대표 국제아트페어 키아프(Kiaf)와 프리즈가 처음으로 공동개최되기 때문이다.
프리즈는 영국 런던에서 2003년 현대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를 출판해 온 어맨더 샤프와 매튜 슬로토버가 시작했다. 영국 현대미술계는 물론 세계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미술품 전시 및 거래 행사로 자리매김해 스위스 아트바젤, 프랑스 피악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린다.
올해 미술계는 3월 화랑미술제를 시작으로 5월 아트부산 9월 프리즈까지 굵직한 아트페어로 활황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 주요 관계자는 6일 “기존 5000억원이던 미술 시장이 1조원 시장에 도달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미술계 재편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주변 국가나 세계 미술시장이 서울을 ‘괜찮은 로컬 시장’ 정도로 보던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