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사고로 28세의 나이에 순직한 심정민 소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심 소령의 공군사관학교 동기회장은 영결식에서 “끝까지 조정간을 놓지 않은 너처럼 우리도 남은 몫까지 다하겠다”고 침통해했다. 공군은 심 소령의 순직에 “전투기 진행 방향에 민가가 여러 채 있었다”며 “심 소령이 이를 피하기 위해 비상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조종간을 끝까지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인의 순직 이후 계급 추서와 영결식을 통한 추모, 국립묘지 안장은 속도감 있게 이뤄졌다. 전투기의 급강하 순간에 표출된 그의 숭고한 뜻은 기려 마땅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움은 떨칠 수 없다. 그가 애초의 선언과 달리 탈출을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서다. 심 소령은 추락 직전 지상관제탑과의 교신을 통해 2차례 ‘탈출(Ejection)’을 선언했다. 사투를 펼쳤을 찰라의 순간, 그의 마음은 간절했을 터다. 소식을 접한 유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끝까지 잡은 조종간’, ‘조국을 지키는 하늘의 별’이라는 추모의 표현은 탈출하고자 했던 심 소령의 갈망과 유족의 원통함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심 소령은 마지막 정황을 비행기록장치에 남기면서 공군에게도 숙제를 남겼다. 고인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개인의 순직과 희생정신으로 더 큰 사고를 막았더라도 시스템의 잘못이 있었다면 문제다. 고인이 조종간을 잡은 사고 기종은 1986년 도입된 F-5 노후 전투기의 일종이었다. 북한마저 추락사고가 난 이후 “남조선에서 F-5 전투기는 사고 단골 기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고 직격한 전투기다.
공군엔 노후 기종이 차고 넘친다. 공군은 설계수명이 4000시간인 F-5E/F 80여대를 운영하고 있다. 연평균 훈련시간을 계산하면 수명은 25년이다. 공군은 정책 결정에 따라 같은 기종의 설계수명을 1999년 31년으로 했다가 최근엔 43년까지 늘려왔다. 설계수명을 늘린 노후 전투기 F-5는 20년 동안 12대가 추락했다. 2년이 안 돼 1대 이상이 추락한 꼴이다. 순직 조종사도 많았다. 우리 군에 최첨단 전투기가 없는 게 아니다. F-35A 스텔스와 공중급유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최신예 국산 전투기 개발을 위한 ‘KF-21사업’도 21년 전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난해에야 국산 전투기 시제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직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신속함이 정작 전투기 사업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공군은 F-5 전투기 추락사고로 잠정 중단됐던 훈련비행을 재개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 만이었다. F-5 기종과 이보다 앞서 착륙장치 이상으로 동체 착륙했던 F-35A 스텔스 전투기는 일단 비행 재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남북 대치 상황과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군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이들 전투기의 비행중단 상황도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비행훈련을 위한 준비가 온전히 돼 있는지 여부다. 준비가 부실한 상황에서 젊은 조종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노후 기종의 조정간을 잡을 수는 없다. 조종사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데, 자식이 목숨을 걸고 노후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는 것에 동의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훈련 당위보다는 자식의 안전이 중요한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안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민간 조종사와 달리 전투기 조종사는 적과의 싸움을 상정하는 훈련을 하곤 한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다. 젊은 조종사들에게 훈련을 하게 하려면 당국은 노후 기종의 조기 퇴역과 전력 유지를 위한 대체방안을 확실하게 내놓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일상적인 훈련 재개는 우려를 자아낸다. 사고 발생 가능성은 여전하고, 민가에 피해를 입히는 전투기 추락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민가 피해 최소화를 위한 순직’으로 표현하는 군 당국의 설명이 반복돼서도 안 된다. 결단과 리더십이 절실하다. 당국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현재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 노후 기종을 몰다가 민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젊은 조종사의 순직 사고, 공군이 이런 후일담을 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