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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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살해’ 김태현 무기징역 이유와 60명의 미집행 사형수 [이슈+]

재판부 “사형, 형벌로서 실효성 상실” 지적
2010년대 5명 확정…유영철 등 60명 생존
“사형수, 여유 시간엔 기도 등 종교 행위”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26)이 1심과 2심 법원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 법원은 이례적으로 김씨에게 가석방이 허용돼선 안 된다는 의견을 명시했다.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나, 한국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될만큼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해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미집행’ 상태로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는 사형수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포함해 총 60명이다.

 

◆“사형제, 형벌로서 실효성 상실”

 

서울고법 형사6-3부(부장판사 조은래 김용하 정총령)는 지난 19일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의 사형 구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사형 선고가 마땅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참작할 만한 사정이 전혀 없고, 살해과정이 무자비하며 교화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3월23일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A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집에 찾아가 A씨와 여동생,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럼에도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25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어 국제인권단체로부터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다”며 “(사형은)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 사형 집행은 25년 전...60명 미집행 상태

 

실제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시기는 1997년 12월 30일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당시 ‘여의도 광장 질주사건’을 저지른 김용제 등 23명의 형을 한꺼번에 집행한 이후 24년 넘게 추가 집행이 없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형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 후보 시절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2020년 유엔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반면 법무부는 지난해 1월 사형제 폐지 헌법소원을 3년째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집행까지 이뤄지지 않지만, 여전히 형법에는 사형 집행 방식과 절차 등이 명시돼 있다. 형법 66조는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絞首)하여 집행한다”고 규정한다. 당장 사형 집행이 이뤄져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2014년 11월 7일 강원 고성 GOP(일반 전초)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 임모(23) 병장이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제3차 공판을 마치고 군용버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사형 선고는 2010년대에도 꾸준히 있었다. 가장 최근에 사형이 확정된 경우는 2014년 22사단 GOP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이다. 이밖에 대구에서 전 여자친구 부모를 살해한 장모씨(2015년 확정), 강화도 해병대 부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김모 상병(2013년 확정), 전남 보성 어부 살인사건 범인인 오모씨(2010년 확정), 전남 영암 연쇄살인사건 범인인 이모씨(2010년 확정) 등 총 5명이 2010년 이후 사형이 확정됐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60명의 사형수가 ‘미집행’ 상태로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다.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유영철은 서울구치소 수감 시절 자주 교도관을 폭행하거나 난동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사형수도 있었다. 보고서는 “사형확정자들은 교정 기관 밖의 평범한 생활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 처우의 불확실성, 반복되는 수용생활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답함과 무기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움을 느낀다”라며 “많은 사형확정자들은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 경전 읽기, 필사 등 종교적인 행위로 빈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