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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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빈집, 기억을 담다...제주패스·다자요, 3월 빈집 재생 스테이 본격화

제주패스의 통합 여행포털 출시 맞춰 4채 먼저 오픈

여행지의 숙소를 고를 때 뭔가 특별한 경험을 기대한다. 호텔과 리조트, 풀빌라 등 편리하기만 한 숙소가 아니라 오랜 기억을 담은 빈집을 새롭게 단장한 숙소들이 제주에서 곧 문을 연다.

 

제주의 단기 렌터카 서비스 1위 업체인 ‘제주패스’는 빈집 재생 스타트업인 ‘다자요’와 함께 ‘빈집 재생 스테이’를 오는 3월 본격화한다. 배우 류승룡씨가 공들인 ‘하천 바람집’을 시작으로 ‘월령 바당’, ‘두모 옴팡’ 등이 제주 이야기에 귀를 연 여행객을 손님으로 들인다. 류승룡씨는 우연히 다자요의 숙소에 머무른 뒤 고즈넉한 제주를 느끼게 해주는 매력에 빠져 팬이 됐다고 한다.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 있는 하천 바람집은 제주의 ‘바람’을 담은 집으로 소개됐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대가족이 머무는 안거리와 창고, 축사를 엮어 6∼7인용 숙소를 만들었고, 밖거리는 2인용 숙소가 됐다. 4·3 때 폭압을 피해 피신한 곳으로, 84년 전 터잡아 세 자녀의 결혼식을 올린 추억이 깃든 집에 새 손님들을 맞게 된다. 류승룡씨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 했다. 다도와 목공을 즐기는 류승룡씨가 직접 만든 찻잔이 바람집에 놓인다. 6∼7인용 숙소에 별이 보이는 야외 자쿠지(월풀욕조)가 있다.

 

월령 바당집은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넘게 비어있던 집을 물려받은 조카가 다자요에 의뢰한 집이다. 월령은 다자요 남성준 대표의 고향이다. 남 대표는 4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초등학교 때 이곳을 떠났는데, 월령 바당집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동네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움이 커졌다고 한다.

 

두모 옴팡집은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신창 해안도로와 연결된 아름다운 서쪽 바닷가 마을 안쪽으로 돌담길을 따라 집이 움푹 들어가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가 마주 보고 있는 형태다. 월령 바당집과 두모 옴팡집에도 야외 자쿠지가 놓인다.

 

제주패스와 다자요가 손잡은 빈집 재생 프로젝트는 원래 2017년 시작됐다. 다자요는 2017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청년 창업 아이템 공모전에서 오래된 빈집을 10년간 무상임대 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빈집 프로젝트’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듬해 여름 서귀포 도순의 방치된 돌담집을 재생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구체화했는데, ‘집주인이 늘 해당 집에 거주해야 한다’는 농어촌민박업 규정에 가로막혔다. 주인이 직접 거주하지 않는 빈집 재생 프로젝트는 불법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에 판매하는 ‘사업’을 접고, 프로젝트에 투자한 주주들에게만 집을 빌려줬다.

 

그러다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조건부 시범사업 시행이 확정됐고, 하천 바람집을 시작으로 올해 총 8채의 재생 빈집이 일반인에게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다자요의 빈집 재생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도순돌담집은 100년이 넘은 서씨 집안의 종손집이다.

제주패스를 운영하는 캐플릭스는 제주 1위 렌터카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항공, 숙박, 맛집, 카페 등의 정보를 모은 AI(인공지능) 기반의 ‘제주여행 수퍼앱’을 오는 2월 말 시작한다. 다자요와 함께 준비 중인 빈집 재생 프로젝트도 캐플릭스의 통합 포털을 기반으로 꽃피우게 된다.

 

캐플릭스 윤형준 대표는 “새로운 숙소들은 제주패스의 통합여행 포털 서비스 출시에 맞춰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며 “4채를 시작으로 올해 안에 8채가 문을 열고, 향후 100채로 늘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캐플릭스 윤 대표와 다자요 남 대표는 한동네에 사는 ‘절친’이다. 제주스타트업협회 초대 회장이 윤 대표, 2대 회장이 남 대표다. 윤 대표는 “형이 규제 때문에 투자자는 물론 기회까지 잃을 상황에 내몰렸다”며 “그래서 의기투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 여행은 새롭게 바뀔 것”이라며 “숙박만큼은 차별화된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한때 주춤했던 빈집 재생 프로젝트가 제주를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할지, 프랑스나 독일 등 해외까지 뻗어나갈지는 3월 이후 소비자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주=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