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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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백신 연구 30년도 안돼… 국내 기술로 ‘백신주권 확보’ 시급 [연중기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팬데믹시대 장기전략 마련 목소리 〈끝〉

국내 코로나 백신 일러야 상반기 상용화
독자개발 없인 위탁 생산기지 불과 지적

다국적 제약사와 기술·자금력 큰 격차
美 2021년 개발예산 20조… 韓 76배 달해
제약사 1곳 연구비가 국내 예산 넘기도

의약대 졸업 뒤 개업… 연구인력도 부족
“컨트롤타워 마련… 민관펀드 투자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 상륙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국내 백신 상용화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해 4월부터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반드시 끝을 보자”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무작정 국산 백신 개발만 독려한다고 장밋빛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백신 개발과 관련한 기술 수준과 정부 지원 규모 등에 한계가 있는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맞게 될 새로운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백신 연구개발은 꾸준히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K-백신,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나 가능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개발 진행 중이거나 상용화된 제품은 19개 품목이다. 이 중 허가 완료된 7개 품목은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얀센, 모더나, 노바벡스 등 모두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국내 회사가 개발한 백신 중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제품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후보물질 ‘GBP510’이다. 국내 유일한 임상 3상 단계 진입 품목으로,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과 동남아, 오세아니아 지역 등의 시험 대상자(4037명) 모집을 완료하고, 검체 분석에 들어갔다. GBP510은 독감이나 B형 간염 백신 등 기존 백신에서 장기간 활용되면서 안전성·유효성이 확보된 재조합 단백질(합성항원) 방식 기반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GBP510의 국내 신속 허가,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성평가(PQ) 인증, 해외 국가별 긴급사용승인 허가 획득에 나설 계획이다. 이외에도 셀리드, 아이진, 유바이오로직스, 진원생명과학 등 국내 업체들이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치료제의 경우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베클루리(성분명 렘데시비르)와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 등 주사제 2종이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는데, 이 중 렉키로나가 유일한 국산 치료제다.

◆속도 밀린 원인은 기술·인력·자금력 부족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백신 개발 역량과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막강한 기술 수준과 자금 동원 능력을 갖춘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업체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길게는 수백년의 백신 개발 역사를 가진 선진국과 달리, 한국이 자체 백신 기술 개발에 본격적인 역량을 투입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단적인 예로 모더나와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11개월 만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통상 백신 개발에 10∼15년이 걸렸던 것과 달리 단백질 핵심 설계도의 역할을 하는 mRNA 기반 기술을 이용한 덕분이다. 화이자 백신 개발의 주역인 헝가리 출신의 커털린 커리코 박사는 1970년대부터 mRNA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모더나 백신 개발에 기여한 드루 와이즈먼 교수도 2005년부터 커리코 박사와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mRNA 연구를 10년 넘는 세월을 투자했다. 아직 mRNA 분야 연구가 걸음마 수준인 우리나라와는 애초에 출발점이 달랐던 셈이다.

백신 개발 예산에서도 선진국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에 20조원을 투입했는데, 우리 정부가 지난해 배정한 총 예산은 2627억원으로 76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올해는 예산을 2배 이상 늘려 5457억원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지원할 예정이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 1곳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우리나라 정부의 관련 예산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의대나 약대를 졸업하면 개업을 선호하는 분위기인 데다, 그나마 나머지 극소수 연구인력도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격차 잡으려면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변화 불가피”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까지 계속되면서 백신 주권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공고해지는 상황이다. 최소 3차 또는 4차까지 추가 접종(부스터샷)이 불가피해졌고, 향후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경우 독감처럼 매년 백신을 접종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신 물량 확보와 비용 측면에서만 봐도 다양한 국산 백신이 개발될수록 유리해지는 구조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백신 주권과 제약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면서 “국내 기업이 독자적인 백신 개발을 하지 않는 한 ‘백신 허브’ 구축 구상은 위탁생산 기지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각 부처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1위 제약기업의 연간 매출이 1조6000억원 규모인 데 비해 백신이나 신약 개발에 필요한 글로벌 임상 3상에는 최대 1조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임상시험에 실패할 경우 회사 전체 경영에 엄청난 압박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백신 개발 여력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바이오혁신포럼 위원장을 맡은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백신 등 신약 창출을 위한 투자 규모의 대형화 차원에서 5조원 이상의 민관 합동 메가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신약 후보물질 개발과 후기 임상, 상용화에 이르는 전 주기적 지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