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현장에선] 포퓰리즘 정치권… 미래 맡겨도 될까

유력한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가상자산 과세를 완화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내년부터 250만원을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예정인데, 과세 기준 금액을 500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주식투자와 같은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인데, 국내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는 주식투자와 투기성이 강한 가상자산을 같은 성격으로 보는 게 맞는 것일까. 자금력이 떨어지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자산 투자를 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혜택을 주려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표를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20% 수익률을 거둔다고 쳐도 5000만원을 벌려면 2억5000만원을 투자해야 한다. 사실상 면세로 보이는 수준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선후보들은 돈 쓰기 공약을 경쟁하듯 마구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막대한 재정지출이 필요한데, 재원 마련 방안은 명확하게 내놓지 않고 있다. 달콤한 거짓말로 들린다. 누구의 공약인지도 헷갈릴 때가 많다. 대선은 ‘승자 독식’이기 때문일까. 영화 ‘타짜’에 나오는 “묻고 더블로 가”라는 대사가 생각날 정도다.

우상규 경제부 차장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1월 추경안 편성에 나섰다. 1월 추경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한 차례 있었을 뿐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한 이후만 따져보면 처음이다. 올해 예산 집행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여당이 주도하고 야당이 묵인하면서 무리하게 돈 풀기에 나선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런데 정치권은 한술 더 뜨고 있다. 국민의힘은 35조원 규모의 추경을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35조원 추경 처리를 위한 ‘대선 후보 간 긴급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추경 규모를 45조원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나랏빚 증가 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라 우려의 목소리가 안팎으로 끊이지 않는다. 현 정부 첫해인 2017년 국가채무는 660조2000억원이었지만 이번 추경으로 올해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5년 만에 415조원 넘게 불어난다.

나라 곳간지기를 자처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와 국채시장 등 다른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해 규모를 판단했기 때문에 정부의 추경안이 최대한 존중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증권거래세 인하 반대,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반대 등 여러 사안을 놓고 여당에 번번이 무릎을 꿇어 ‘홍백기’라는 굴욕적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물론 5차 재난지원금의 ‘소득 하위 80%’ 기준을 지켜내는 등 ‘승전’기록도 없지는 않다. 이번 추경 증액은 막아낼 수 있을까.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말이 있다. 현재에 급급해 미래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치권은 ‘당장 급한데 미래 걱정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만 가득한 듯하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들에게 맡겨도 되나 걱정된다.


​우상규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