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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佛 몽클라르 장군, 한국서 라틴어로 소통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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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적 군인답게 라틴어 등 7개국 언어 구사
천주교 신자로 라틴어 아는 학생이 통역 맡아
6·25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미 육군 폴 프리만 대령(오른쪽)과 그 휘하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를 이끈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지프차에 탑승한 모습. 유엔사 SNS 캡처

6·25전쟁 당시 프랑스 육군의 중장에서 중령으로 계급을 낮춰 프랑스 대대를 이끌고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랄프 몽클라르(1892∼1964) 장군은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6·25전쟁의 대표적 격전으로 프랑스군이 맹활약했던 ‘쌍터널 전투’(1951년 1월 31일∼2월 1일) 71주년을 맞아 몽클라르 장군을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3일 유엔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쌍터널 전투 당시 미 육군 제23보병연대와 거기에 배속됐던 프랑스 대대의 활약상이 소개돼 있다. 프랑스는 6·25전쟁를 치르는 한국을 돕기 위해 육군 1개 대대 병력, 그리고 해군 구축함 1척을 파병했는데 그중 육군 대대는 규모가 작아 독자적 작전을 펼치는 대신 임시로 미 육군의 일부가 되어 싸웠다. 프랑스군을 이끄는 몽클라르 장군이 장성 계급장을 떼고 대대 지휘관에 해당하는 중령 계급장을 단 이유이기도 하다.

 

쌍터널 전투는 경기도 양평 지평리에서 남쪽으로 6.4㎞쯤 떨어진 강원도 원주의 중앙선 철도 터널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뜻한다. 6·25전쟁을 통틀어 유엔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꼽히는 지평리 전투의 전초전에 해당한다.

 

당시 인해전술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중공군을 저지하는 것이 유엔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마침 원주에 있던 미군이 지평리로 보낸 수색대가 중공군을 발견했다. 적보다 먼저 지평리를 장악할 필요성을 느낀 미군 및 휘하 프랑스군은 1951년 1월 31일 터널 부근에 진을 치고 중공군의 습격에 대비했다.

 

이튿날인 1951년 2월 1일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지형이 험난해 탱크의 기동이 제한되고 안개가 짙어 전투기 등에 의한 근접 항공지원도 불가능한 악조건 속에서 유엔군은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중공군과 맞서 육박전을 벌여야 했다. 선봉대 역할을 맡은 프랑스군의 피해가 제법 컸지만 결과적으로 유엔군은 중공군 측에 몇 배나 더 많은 인명피해를 안기며 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승리는 약 열흘 뒤 벌어진 지평리 전투(1951년 2월 13∼15일)에서 유엔군이 엄청난 전과를 올리며 중공군을 격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미 육군 폴 프리만 대령(왼쪽)과 프랑스 육군 장성 랄프 몽클라르 장군(오른쪽).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쟁 당시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낮춰 프리만 연대장 휘하 대대장으로 싸웠다. 유엔사 SNS 캡처

쌍터널 전투와 지평리 전투에서 이긴 미 육군 23연대는 폴 프리만 대령이 지휘했다. 그 밑의 대대장들 중 한 명이 바로 프랑스 대대장 몽클레르 장군이었다. 대령이 얼마 전까지 중장이다가 스스로 중령으로 내려앉은 장성의 상관 노릇을 하는 다소 어색한 상황이었으나, 둘 다 훌륭한 군인답게 자기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프리만 연대장은 대대장을 ‘몽클레르 장군’이라고 부르며 예우했고, 몽클레르 대대장 역시 연대장을 비롯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미군 장교들을 깍듯하게 대했다.

 

눈길을 끄는 건 몽클라르 장군이 한국인과 소통한 방식이다. 학구적 군인이었던 몽클라르 장군은 라틴어를 포함해 7개 국어를 구사했다. 다만 한국어엔 문외한이었는데 천주교 수도사 밑에서 자란 학생이 그의 통역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어려서 라틴어를 배웠고 따라서 그가 한국어를 라틴어로 번역해 몽클레르 장군에게 설명하는 식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한국의 전쟁터에서 뜻밖에도 라틴어가 소통의 수단으로 쓰였다는 점이 놀랍다.

 

1951년 정년을 맞아 프랑스로 돌아간 몽클레르 장군은 한국으로 치면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돼 상이용사 등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1964년 타계했다. 프랑스는 6·25전쟁 기간 연인원 8200여명이 참전해 280명이 전사하고 1350명이 부상했다. 우리 정부는 2012년 몽클라르 장군을 ‘2월의 전쟁영웅’으로 지정해 고인의 무공과 한국 평화에 헌신한 프랑스군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