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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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 모르는 게 뭐가 문제?”… ‘기후 리스크’ 모르는 게 진짜 문제

尹, 첫 대선후보 TV 토론서 “RE100이 뭐죠”
‘기후변화에 무지’ vs ‘장학퀴즈 하냐’
‘기후 리스크’, 단순한 환경 아닌 경제 문제
구체적인 기후·환경 정책 내보여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 후보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일 열린 첫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당황케 했던 질문은 ‘배우자 리스크’가 아닌 ‘기후 리스크’였다. 윤 후보가 RE100(재생에너지 100%)·EU택소노미(Taxonomy) 등의 의미를 몰라 질문을 되묻는 일이 반복되자 “기후에 무관심”,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장학퀴즈냐”며 과도한 공세로 치부하지만, 전문용어를 모르는 것보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KBS·MBC·SBS 등 방송3사 합동 TV 토론에서 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RE100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묻자 “RE100이 뭐죠?”라고 되물었다. 윤 후보는 “EU택소노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들어본 적 없으니 알려달라”고 설명을 부탁했다.

 

RE100은 기업들이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만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다. 택소노미는 녹색분류체계로 기후·환경친화적 산업활동을 구별해 투자와 세금 지원 등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날 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함량 미달’이라며 윤 후보를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트집’을 잡는다며 반박했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4일 “윤 후보는 위기를 더 위기로 만드는 준비가 안 된 후보”라며 “대선후보가 RE100을 모른다는 것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박민영 청년보좌역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듣는 국민도 ‘RE100이 뭐지?’ 하면서 들었을 것”이라며 “대통령 선거가 무슨 객관식 암기왕 뽑는 자리인 줄 아시냐”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연합뉴스

온라인에서도 “진로이즈백은 알아도 알이백은 모른다”, “장학퀴즈냐”며 생소한 용어로 괜한 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대선 후보라면 무조건 알아야 할 사항”, “기후변화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대선 후보가 모든 용어를 알기는 어렵더라도 국제사회가 당면한 기후 리스크에 대한 고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탈탄소 등 친환경 경제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데도 대선 후보가 이와 관련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일축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윤 후보는 이 후보의 용어 설명을 듣고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수소 경제는 너무 막연하다” 등 기술 문제를 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기후 리스크는 간단히 말해 기후변화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다. 단순히 환경 오염에 따른 피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각국의 환경 규제를 넘지 못하거나 친환경 제조 과정을 요구하는 기업과 거래하지 못해 매출이 감소하는 경우도 해당한다. 탄소국경세를 물거나 탄소배출권 구매 탓에 비용이 상승하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박영선 선대위 디지털대전환위원장은 이날 “BMW는 2018년 LG화학에 부품 납품 전제조건으로 RE100을 요구하면서 계약이 무산됐고, 애플은 2020년 반도체 납품물량을 놓고 SK하이닉스에 RE100을 맞출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이 협력업체에까지 RE100 동참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RE100 도입 추세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새로운 무역장벽의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선대위 디지털대전환위원장. 연합뉴스

기업들도 기후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지정학 리스크보다 더 큰 리스크는 기후변화”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미·중 갈등은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해결책 내면 되는 사안이지만 기후변화는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하다못해 반도체를 만들든, 석유화학을 하든, 정유업을 하든 전부 다 바꿔야 하는 숙제”라고 했다. 친환경 체제로의 변화를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힌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며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에너지전환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중요한 경제 동력으로 삼고 있다”며 “윤 후보는 세계적 경제 흐름인 RE100도 모르고, ‘100% 재생에너지는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무슨 경제 성장을 논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윤 후보의 기후·환경 정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은 환경단체가 꾸준히 제기해왔다. 최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대선 후보들의 기후정책을 평가하면서 윤 후보에게 ‘낙제점’을 줬다. 단체는 윤 후보의 정책에 대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말고는 구체적인 탄소 감축 방안이 모호하다”고 평가했다. 또 윤 후보가 탈핵과 석탄화력발전 건설 중단, 신공항 백지화에 모두 반대하는 것도 비판적으로 봤다.

사진=연합뉴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2018년 대비 탄소배출량 40% 감축)를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2050년 탈석탄(탄소중립)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달 25일 환경·농업 공약을 발표하며 석탄발전소 신축 공사에 대해 “중단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윤 후보는 ‘원전 최강국 건설’을 주장하며 원전을 늘린 에너지믹스를 강조하지만, 명확한 실행 목표는 내놓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여러 가능성을 보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도 밝히지 않았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