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이보다 앞서 2017년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이 50% 돌파했다. 2020년엔 전체 시·군·구의 66%(151곳)에서 출생보다 사망이 많은 ‘인구의 데드크로스’가 일어났다.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7곳은 이미 2000년 이전부터 데드크로스가 시작됐다.
인구와 자본의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격차는 지속·확대되고,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올해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재인정부를 비롯한 2000년 이후 역대 정부별 국가균형발전 주요 정책을 살펴봤다.
◆4개 정부 지역문제 인식에서 차이
9일 산업연구원의 ‘한국 지역정책의 변천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인식하는 지역균형발전 문제는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노무현정부는 ‘수도권 일극 집중과 지역 간의 불균형 심화’를 문제로 봤다. 지역격차 문제를 경제발전 과정의 구조적 산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장기적·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것이다. 2003년 기준 수도권은 인구의 47.6%, GRDP의 48.1%, 총사업체의 46.2%, 토지가액의 59.3%를 점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 추진돼 온 수도권 집중 억제의 소극적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지방발전에 초점을 둔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명박정부는 ‘지역의 글로벌 경쟁력 취약’이 문제라고 인식했다. 국내 지역들의 글로벌 경쟁력 부족을 주로 해외 선진국 광역경제권들과 비교를 통한 상대적 열위 차원에서 지역문제를 바라봤다. 중앙정부 의존, 행정구역 단위의 소규모 분산·중복투자 등 주로 내부적 관행·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박근혜정부는 공간에서 사람으로, 지역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경제적 격차뿐 아니라 ‘삶의 질 격차’가 확대되는 것으로 문제로 인식했다. 지역주민들이 체감하는 낮은 삶의 질 수준과 행복지수를 정책적 대응이 시급한 문제로 본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확대로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것을 국가적 당면과제로 인식했다. 다만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양상의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별로 정책목표와 우선순위 달라
문제인식의 차이는 정책목표와 전략, 추진 사업의 차이로 이어졌다.
노무현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등 지역균형발전의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분산정책과 지역전략산업 육성 등 산업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중앙행정기관을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은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된 이후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를 거쳐 문재인정부까지 특별법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그 결과 2019년까지 최근 3년 동안 인구(연평균 증가율 15.6%), 취업자(연평균 증가율 13.3%), 종사자(연평균 증가율 11.3%), 사업체(연평균 증가율 14.8%), 특허(연평균 증가율 20.6%), 로컬푸드 매출액(연평균 증가율 35.4%) 등에서 균형발전 선도도시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성과를 냈다.
이명박정부의 대표적 사업은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이다. 선택과 집중 논리에 따라 3년 이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유망상품 개발을 목표 등을 지향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1130개의 지역기관을 지원했고, 같은 기간 매출 10조6077억원, 수출 59억달러, 고용 1만9529명을 달성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 사업은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이다. 소외된 농어촌 낙후지역 주민들의 생활불편을 해소하고 전국 어디서나 기본적인 생활서비스 공급 및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했다. 2015년 처음 신규 지구를 55개 지정한 후 2019년까지 총 206개 지구 사업이 추진됐고, 5년간 2053억원 수준의 재정이 지원됐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의 관계자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 사업 만족도(86.0점)와 마을 발전 기여도(87.7점)가 높았다.
문재인정부는 혁신도시와 연계된 ‘국가혁신클러스터사업(국가혁신융복합단지)’을 대표 사업으로 추진했다. 물적·인적 인프라가 갖춰진 기존의 구역·지구·단지·특구를 활용해 새로운 경제적·산업적 상승효과를 촉진하고, 균형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성장거점으로 정의된다. 2018년 150억원, 2019년 420억원을 지원해 고용 225명과 사업화 매출액 435억원을 창출하고, 중핵기업 181개를 유치했다.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연계육성사업도 펼쳐 고용 208명과 사업화 매출액 566억원을 창출하는 효과도 냈다.
각 정부의 지역정책의 목표 및 전략을 방향성 측면에서 보면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는 지역 간 격차 해소(형평성)에, 이명박정부는 지역 경쟁력 제고(효율성)에, 박근혜정부는 지역 주민의 삶의 질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차이점이 있다.
공간 단위로는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가 명목적으로 비수도권에 초점을 둔 지역정책을 펼친 반면 박근혜정부와 이명박정부는 광역경제권, 지역행복생활권의 구성·운영 등 수도권을 포함해 추진했다.
산업연구원은 노무현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선(先)지방 육성, 후(後)수도권 규제 개선’의 정책 기조를 강조하고 지역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이를 반영하려고 노력한 반면, 이후에는 이러한 기조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수도권 인구·GRDP 점유율 갈수록 늘어
역대 정부의 지역정책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을까. 통계청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점유 비중 추이를 보면, 수도권은 노무현정부부터 비중이 증가하고 비수도권은 비중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비중 차이는 2003년 5.1%, 2008년 2.4%, 2013년 1.2%로 감소하다가 2019년 역전됐고, 2020년에는 수도권 비중이 0.5% 높아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GRDP 점유 비중 역시 노무현정부부터 수도권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GRDP 비중 차이는 2003년 0.03%, 2008년 0.02%, 2013년 0.01%로 감소하다가 2015년에 역전돼 수도권이 2019년 0.04% 높다. 취업자 수 역시 수도권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수도권 우위의 청년고용률 격차도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수도권의 지역산업 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해 수도권과의 격차를 개선하는 지역정책의 목표와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장은 “대통령 5년 단임제로 인해 5년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지역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지역정책이 중층적 구조와 단절성의 문제가 나타난다”며 “전문가 의견조사에서도 지역정책의 불연속성, 조정·통합 기능의 미흡, 중앙 주도 방식의 한계, 모니터링 및 평가체계 미흡 등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김재홍 울산대 교수(행정학)는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이나 교통정책을 예로 들며 “사람들이 비수도권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수도권에 살 수 있도록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정책이 많다. 그렇게 해선 답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비수도권에 획기적인 투자가 없으면 지금과 같은 추세의 반전은 어렵다”며 “광역 지방정부를 만들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예산 따먹기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