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배우자 김혜경씨가 9일 ‘과잉 의전’ 등 논란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난달 28일 김씨 사적 심부름에 경기도청 공무원이 동원됐다는 첫 언론보도 이후 12일 만이다. 김씨는 앞서 지난 2일 서면 입장문을 통해 송구하다는 뜻을 밝힌 뒤 침묵을 지켜 왔다. 그러나 이 후보가 30%대 박스권에 갇혀 지지율이 정체 중인 상황에서 관련 의혹 보도가 계속 이어지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씨의 이날 기자회견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 이력 의혹을 사과하며 고개 숙인 지 45일 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김씨의 사과가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 베이지색 바지 정장에 낮은 단화를 신은 차림으로 등장했다. 김씨는 “이재명 후보 배우자 김혜경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준비한 입장문을 약 3분간 천천히 읽어나갔다. 김씨는 “저의 부족함으로 생긴 일들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단상 옆으로 나가 한 차례 더 고개를 숙였다. 긴장한 듯 이따금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입장문 발표를 마치고 한 차례 더 고개 숙인 김씨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이어 나갔다. 김건희씨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없이 회견을 끝낸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김씨는 “A씨는 제가 경기도에 처음 왔을 때 배모씨(전 경기도 총무과 소속 별정직)가 소개해 줘서 첫 날 인사하고 마주친 게 다이다. 그 후에는 소통하거나 마주친 게 없다”면서 “제가 A씨와 배씨의 관계를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A씨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간 김씨를 두둔하면서 제보자를 A씨를 문제 삼은 데 대해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씨는 ‘오늘 사과하신다고 하니 후보님은 뭐라고 하셨나’라는 물음에 “진심으로 사과드리면 좋겠다고 했다”고 답하며 울먹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다만 자신에게 제기된 숱한 의혹들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은 없었다는 점에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씨는 이날 ‘보도된 각종 의혹의 사실관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결과가 나와 책임이 있다면 책임질 것”이라고만 답했다. 취재진은 당사에서 떠나는 김씨를 향해 ‘약물 대리처방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배달된 음식을 가족들이 함께 먹었는가’ 등을 물었지만 김씨는 대답 없이 차에 올라탔다. 취재진이 몰리자 한 차례 휘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씨에게 제기된 의혹은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과잉의전, 지자체장 부인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전담 공무원 배속 등이지만 김씨는 이날 사과에서 불찰이라는 말만 강조했을 뿐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배씨와 A씨에 지시했는지, 관련 사항을 사전에 알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박찬대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김씨가) 언론과 국민 앞에 모습을 나타내서 목소리와 얼굴로 송구하다는 사과 말씀을 드린 만큼, 지난번 서면 입장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한 진정성을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선대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수사, 감사를 핑계로 선거일까지 시간을 끌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와 의구심을 결코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오현주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동안 제기된 김혜경씨의 문제에 대한 국민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보자 A씨는 측근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법인카드 유용을 어디까지 인정하는지’, ‘그 많은 양의 음식은 누가 먹었는지’를 되묻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