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가을 건물에 충돌해 기절한 멧도요새를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보낸 적이 있다. 부리가 긴 멧도요는 충돌 후 하늘을 향해 쓰러져 있었고, 가녀린 발을 떨고 있었다. 새는 회복치료를 받았으나 이틀 뒤 폐사했다. 나그네새인 멧도요는 겨울을 나기 위해 아북극(亞北極) 유라시아로부터 남쪽나라로 향하려던 참이었을 것이다. 매년 봄, 가을에 우리나라를 지나갔을 멧도요는 그해, 그렇게 한반도를 지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새는 눈이 머리 옆쪽에 있어 전방 장애물을 피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유리의 투명·반사를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중력을 거슬러 날기 위해 비행속도가 72㎞/h 정도까지 높아지는데 충돌 시, 가볍게 진화한 그들의 계란 껍데기보다 얇은 머리뼈가 깨지고 만다. 그래서 대부분 즉사하거나 두개골 골절 등의 영구장애를 입는다. 국내에서만 한해 800만마리의 새가 유리창 충돌 피해를 겪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환경부에 따르면 2015~2020년 조류 충돌 피해로 발견된 9600개체 중 30% 이상이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황조롱이 등 법정 보호종이었다.
지난해 환경부가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 고시에 조류의 투명 방음벽 충돌을 최소화하도록 명시했다. 조류 충돌 문제를 행정에 처음으로 반영한 의미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의무화는 아니란 점, 방음시설 외 건물 충돌에 대한 대책은 부재하다는 점에서 과제가 남았다.
충돌 방지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자외선 반사 테이프 부착을 통한 조류 충돌 저감효과를 과학적으로 확인했고, 네이처링 앱을 통해 국민 참여로 전국적 충돌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해 ‘야생조류충돌 예방 조례’를 제정해 화제가 되었고 이어 광주광역시도 관련 조례를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시행을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조류 충돌 방지 관련 법률 개정안은 19대 국회부터 제출됐는데 통과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도 이 법안이 제출돼 있다. 새들에게 안경을 선물할 수 없는 우리는 법을 통해 그들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당장 모든 건물에 충돌 방지를 적용하기 힘들다면 친환경 건축물 인증 조건에 이를 추가하거나, 공공건축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환경부는 ‘2022년도 자연보전 분야 업무계획 중점추진과제’를 통해 조류 충돌과 같이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생태원의 오랜 연구, 그리고 지자체와 국민의 노력이 올해에는 반드시 결실을 봐 해마다 희생될 800만마리의 새들을 구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