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그동안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의 내부에 위치하여 판의 경계에 있는 일본, 대만, 네팔, 이탈리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낮고 규모도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 지진 대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한반도에서 지진이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약 1800회 발생했다고 기록돼있다. 이 가운데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가 기록된 강한 지진은 40여회로 비교적 적으나,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지진으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경험이 적은 우리에게 주변국의 지진 대응 사례는 중요한 참고자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에 걸쳐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추진해 지난 18일 ‘국외 문화재 지진피해와 대응사례’ 보고서를 내놨다. 특히 지진으로 인하여 문화재 피해가 크게 발생한 네팔·대만·이탈리아 3개국을 대상으로 지진으로 인한 문화재 피해와 복구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했다. 조사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중국, 미얀마, 뉴질랜드 등 조사 대상국을 넓혀갈 예정이다.
◆네팔, 지역사회 의지와 협조가 최우선
네팔 수도 카트만두를 포함한 중부 전역은 2015년 4월25일 발생한 고르카 지진(규모 7.8)으로 거대한 재난현장으로 변했다. 이 지역에는 본진 발생일부터 그다음 달까지 규모 6.7, 6.9, 7.3 등 강진을 포함해 규모 4 이상의 여진이 480회 이어졌다. 이 지진으로 8790명이 숨지고 2만2300명 이상이 다쳤다. 약 50만채의 가옥이 파괴됐고 추가로 25만채의 가옥이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총 복구 및 복원 비용은 2억566만8646달러(약 2455억2723만원)로 추산됐다.
12∼18세기에 지어진 사찰과 불상들이 밀집한 카트만두는 문화유산 피해도 심각했다. 31개 지구에서 총 920개의 기념물이 손상됐다. 국가재건청(NRA)이 직접 지원하는 ‘수도원 관리위원회’ 산하 약 845개의 불교 수도원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여기에는 카트만두 밸리의 세계문화유산 7개 기념물 구역 내에서 붕괴된 기념물 33개와 부분 훼손된 기념물 137개가 포함돼 있다.
네팔 지역 조사를 담당한 유네스코 자문위원이자 건축가인 카이 위즈는 당시 네팔의 지진 직후 대응은 준비가 미흡했지만, 전반적으로 큰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구조활동과 협조가 눈에 띄었다. 지역 주민들은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여 기념물의 금속, 석재, 조각된 목재 요소 등 인공물을 회수하고 보호했다.
위즈 자문위원은 네팔의 사례를 두고 “기념물의 재건은 그 기념물을 건축, 유지 및 사용하는 공동체의 요구를 먼저 충족시켜야 한다”면서 “회복력은 단순히 유형 기념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사회의 의지와 수단에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네팔은 ‘지진 피해 유산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기본 지침’과 ‘네팔 지진 후 재건 작업에서의 석회 사용 매뉴얼’ 등 지진 대응 지침과 시공 방안에 대한 기준 등을 마련했다.
◆대만, 대지진 교훈 삼아 대응 법제 갖춰
대만은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해서 오랜 세월 자연재해의 위협을 받아왔다. 1999년 대지진 때 대만 중부지역에서 심각한 문화재 피해를 경험했고, 약 20년간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 법령, 학술 연구 및 실제 준비 측면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중앙기상국은 1999년 9월21일 발생한 규모 7.3의 강진을 100년 만에 발생한 대지진이라 명명했다. 대만 내무부 소방국 자료에 따르면 그해 10월11일까지 대지진으로 2329명이 숨지고 8722명이 다쳤다. 당시 대만의 고적 368개소 중 59개소가 심각한 피해를 보거나 모두 붕괴했다.
대만 대지진은 전형적인 광역재해로 인명구조 및 생명유지 체계의 복구가 우선시됐으며, 상대적으로 중요도에서 밀린 문화재는 우선 복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2005년 문화재법이 1차 전면 개정되어 예방적 보존과 보존 및 재활용의 동등한 중시, 관련 법령과 정책 간의 균형과 통합 등이 강조됐다. 2016년부터는 유형문화재 방재 및 보호 계획(소방서, 경찰서와 협조)에 따라 각 직할시 정부에 지역 전문 서비스센터 구축 계획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2020년 대만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은 9·21지진 20주년을 맞아 ‘대형 지진 발생 후, 문화재 긴급처리 원칙 및 이행 절차’를 수립하고 공포했다. 주요 내용은 대형 지진재해 발생 후 7일 이내에 조사 및 평가를 완료하고, 30일 이내에 긴급 조치를 완료하며, 60일 이내에 전체적인 복원 계획 및 실행 시스템을 제시하고, 6개월 이내에 복구계획을 제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 부처 및 각 기관의 협업 성과
이탈리아는 지형상 지진, 산사태 등 자연재해의 위험과 늘 공존해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2500년 동안 이탈리아는 3만회 이상의 중강도 또는 고강도 지진들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20세기 들어서만 규모 6.5 이상 지진이 7회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지난 40년간 복구 및 재건 비용에만 1350억유로(약 183조1450억원)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2016년 8월24일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인 아쿠몰리에서 규모 6.0 지진이 발생해 역사적 중심지인 아마트리체 마을 등을 강타하면서 303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 뒤이어 일어난 여러 건의 지진들은 수개월간 지속하였다. 가장 심각한 지진은 그해 10월30일 움브리아의 노르차 근처에서 발생한 규모 6.5 지진이었다. 문화재 피해는 엄청났다. 특히 노르차 중심부에 위치한 유럽 수호성인 성 베네딕트 성당이 크게 훼손돼 충격을 줬다.
이탈리아 문화부는 당시 처음으로 비상 상황 시 치안을 관리하는 시민보호청 및 지자체들과 함께 지진 비상대책에 직접 참여했다. 이는 문화재 보호에 참여한 사람들이 비상 단계에서 지진에 의해 훼손되거나 파괴된 소중한 자산의 보호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시민보호청, 군대, 소방대 및 기타 법 집행기관과의 협업이 긴밀하게 이뤄졌다.
이탈리아 중앙문화재 복원연구소 코라도 마리아 엘레나 박사는 보고서에서 “2016년 이탈리아 중부 지진 당시 시민보호청이 소방대와 함께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대처하며 지진으로 인한 잔해에서 상당수의 인명을 구조했다”며 “특히 문화재의 경우 문화부, 법 집행기관, 지방 정부 등이 공동으로 재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절차가 최근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문화재 위험지도 제작과 ‘문화유산 지진위험 평가·완화 지침’ 등을 마련하여 지진을 비롯한 다양한 재난에 대비하고 있으며, 구조물 보강에는 특수 재료와 함께 로마 시대 이래로 사용되어 온 전통 공법을 개선하여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