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인류/송병건/위즈덤하우스/2만2000원
대항해시대는 인류 역사를 중세와 근대로 가른 분기점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중심의 ‘구대륙’이 아메리카 대륙의 ‘신대륙’과 연결되면서 세계화의 근간을 다졌다. 이러한 연결을 기반으로 한 교역은 기술과 문명의 발달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뜻하지 않은 것들도 나눠 갖게 했다. 천연두나 홍역과 같은 감염병이 대표적이다. 구대륙에서 옮겨 온 감염병은 면역력이 없는 신대륙 주민들에게 치명적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멕시코 중부지역의 원주민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전 2500만명에 달했는데 이후 100만명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인구 감소 현상은 외부인과 접촉이 잦고 기온이 높은 해안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오늘날 재난의 역사는 세계화와 맞닿아 있다.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은 더 이상 그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견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이듬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런 대형 재난은 인류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문명을 가졌어도, 일개 바이러스 앞에서 여전히 속수무책이란 점에서다. 신간 ‘재난 인류’는 인류 역사에서 재난이 닥쳐 올 때마다 인류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정리한 책이다. 책 속 사례들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부터 근대로 이르는 과정의 재난은 주로 자연에 의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인류는 재난을 ‘신의 분노’로 여겼다. 이런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리스본 지진’부터다.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 닥친 지진은 지축을 흔들고 쓰나미를 일으켰다. 성당을 비롯한 건물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쓰나미에 휩쓸렸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은 이런 재난이 부족한 신앙심이나 인간의 타락과 방종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계몽주의자를 중심으로 재난의 원인을 탐구하는 계기가 됐다.
18세기 산업혁명은 노동력을 도시로 집중시켰다. 그 결과 재난의 파급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산업현장의 재해는 오늘날에도 발생하지만 당시에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떨어졌고 사회적인 구휼제도도 미비했다.
1845년 유럽에서는 감자역병이 창궐하면서 수확량이 급감했는데 이로 인한 굶주림은 순식간에 퍼졌다. 설상가상 콜레라와 발진티푸스로까지 이어졌지만 이를 통제할 수단은 없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5년간 사망자 수가 100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많은 사람이 유럽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지로 향했고 이마저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20세기 이후 재난은 세계화를 이룩한 인류에게 ‘연결’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일깨운다. 오늘날 인류는 재난에 대해 연결성을 기반으로 대비하고 통제하지만 이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땐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2003년 8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대표적이다. 오후 일과를 마무리하던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상황을 알기 어려웠고 병원에선 급히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물 공급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재난 대비가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일본에서 2011년 3월 발생한 대지진은 자연재해의 위력을 다시금 알려줬다. 당시 해안지역에선 높이 40m에 달하는 초대형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도로와 주택, 차량을 모두 파괴했다. 사망자만 1만6000명에 달하는 대참사였다. 하지만 더 끔찍한 재앙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했다. 당시 원전에는 6m 높이 방파제가 설치돼 있었지만 쓰나미의 위력에 무용지물이었다. 해수는 비상용 디젤발전기와 순환펌프를 침수시켰고 냉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결국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인간은 기나긴 역사를 거쳐 오고도 여전히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지켜 내지 못하는 것일까.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백신도 개발했지만 여전히 감염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결국 세계화에서 비롯된 ‘연결의 역설’로 이어진다. 특정 국가의 백신 이기주의가 이어지거나 저개발 국가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팬데믹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저자는 “질병의 세계화는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그 모습을 보여 왔고, 앞으로도 더욱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며 “국경을 넘어서는 대규모 감염병의 확산은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질병의 세계적인 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고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별로 살펴보자면 ‘약한 고리’를 찾아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장 눈앞의 연결된 사회는 재난에 대응하는 능력이 커진 것처럼 느껴진다. 화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연결망에서 벗어난 소외계층을 양산한다. 감염병 사태에서도 이런 소외계층은 끊임없이 감염 고리를 만들며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책은 지난 역사에서 인류가 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결국 공감과 집단지성, 협력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