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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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감찰부장만 3년 하며 기강 잡은 김형표 前 검사장 별세

제주지검장 시절엔 악덕 상술 등 관광 사범에 ‘철퇴’

대검찰청 감찰부장 자리에만 3년가량 머물며 비리 검사로부터 사표를 받아내 ‘저승사자’로 통한 김형표 전 검사장이 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37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명문 마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1년 고시 사법과 13회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해군 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1966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임명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지검이 초임이란 점에서 당시 검찰 지휘부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인은 1969년에는 검찰의 인사, 예산 등을 담당해 조직 내 최고 에이스들만 뽑혀 가는 것으로 알려진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 발령을 받기도 했다.

 

서울지검 2차장검사, 서울 남부지청장(현 서울남부지검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쳐 1983년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기용됐다. 이후 제주지검, 그리고 고향을 관할하는 마산지검(현 창원지검)에서 일선 지방검사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고인이 제주지검장이던 1985∼1986년 제주도는 결혼을 앞둔 남녀가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였다. 자연히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 지갑을 노린 바가지 씌우기 등 민생범죄가 끊이지 않았는데, 고인이 수사팀을 적극 독려한 끝에 관광사범 대부분을 척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검찰 조직 전체의 살림을 관장하는 대검 총무부장으로 있다가 1988년 노태우정부 출범 이후 대검 감찰부장으로 옮겼다. 1980년대 초 신설 조직인 대검 감찰부의 과장(부장검사급)을 지낸 바 있어 이 업무가 익숙했던 고인은 당시 군부(軍部)가 물러나며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급부상한 검찰 조직의 자정(自淨)에 힘썼다. 특히 1990년에는 검찰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 감찰을 벌여 부동산 투기나 부정한 금품수수 등 정황이 드러난 부장검사 1명, 평검사 1명, 그리고 검찰 직원 6명까지 총 8명한테 사표를 받아냈다. 비리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진 검찰 직원 3명은 구속기소했다.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이 같은 고강도 감찰에 검찰 구성원 모두 행여 꼬투리를 잡혀 조직에서 퇴출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처신에 극도로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 “훤칠한 키에 깔끔한 인상의 성실파 검사” “상하 간에 신망이 두터운 보스 기질의 소유자” 등 평가를 받은 고인은 1991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3년에는 마음이 맞는 몇몇 법조인들과 법무법인 화백을 설립했다. 이 화백이 꼭 10년 뒤인 2003년 법무법인 우방과 합쳐 오늘날 국내 대표 로펌으로 통하는 법무법인 화우가 됐다. 검찰은 물론 변호사업계에도 족적을 남긴 셈이다.

 

유족으로 자녀 김우정·수정·성환씨(동광인터내셔널 팀장)와 사위 정동민씨(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등이 있다. 특히 사위인 정 변호사는 검찰 시절 검사장까지 지냈다. 그가 현직일 때 ‘장인과 사위가 다 검사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법조계 인맥·혼맥을 탐구하는 언론 기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8일 낮 12시다. (02)2258-5940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