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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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스톰' 공포감 스멀스멀… 우크라 사태에 경제 후폭풍 어디까지

글로벌 경제 ‘악화일로’

우크라 주요 농산물 수출 중단
전쟁 길수록 가격 인상 불가피
소비·투자 위축 가능성 커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높아
자동차·반도체의 이익률 하락
국내 경기 불확실성 더 커질 듯
고개 떨군 코스피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62.12포인트(2.29%) 떨어진 2651.31로 장을 마감한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국제 공급망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욱 악화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유가와 환율도 치솟으면서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퍼펙트 스톰’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대외 여건 악화로 우리나라의 경기 불확실성도 크게 확대됐으며,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면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곡물·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등… 고개 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요 농산물에 대해 수출 허가제 도입을 결정했다. 밀·옥수수·해바라기씨유·달걀 등 주요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으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미 개전 이후 호밀·귀리·기장·메밀·소금·설탕·육류·가축의 수출을 중단한 상태다.

이번 조치는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이다. 밀과 옥수수 수출량 기준 각각 세계 4위, 3위 수준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반영되기 전인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140.7을 기록해 1996년 집계 시작 이래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식량 가격은 더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도 폭등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7일 장중 한때 139.13달러에 거래됐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30.50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유가가 2008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다.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와 함께 소비·투자 위축 가능성도 커져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치솟는 유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 성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는 공포가 살아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책위원회의 마리오 센테노 위원도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최근 경고했다.

◆“경기 불확실성 크게 확대”… “원유 100달러 넘으면 반도체·자동차 이익 하락”

대외 여건에 민감한 우리나라 경제도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물가 상승과 수출 감소에 따라 투자 위축, 소득·소비 감소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발간한 ‘3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외 여건에 대한 우려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경고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로 주요국 주가가 하락하는 등 금융 시장이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국제유가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에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산이 전반적인 세계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공급망 교란, 에너지 공급 불안, 유동성 문제 등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이 급격히 커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거시경제 안정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요인은 통제할 수 없으니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는 경기 후퇴 요인이고, 금리 인상을 안 하면 물가 압력이 세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금리 상승 압력 요인을 자꾸 만들면 안 된다”며 “그런 관점에서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 국가부채를 일으키는 것은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과거 WTI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인 경우 반도체업종의 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률은 2.4%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WTI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일 때 반도체업종의 영업이익률은 2.4%포인트, 자동차는 3.1%포인트 각각 하락할 것”이라며 “대신 반도체는 90~100달러, 자동차는 70~80달러 수준에서 영업이익률이 개선된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130달러 선을 돌파, 140달러에 육박했다고 로이터통신·블룸버그통신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7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제2 오일쇼크 오나”… 국내 산업계 초비상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원유 수출 금지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세계 ‘톱’ 수준인 한국 산업계가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지난해부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원자재에 석유 등 에너지 가격 급등까지 겹칠 경우 국내 경제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의 송유관이 진짜 막힐 경우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의 파장이 예상되기에 유류세 한시 인하를 능가하는 폭넓은 산업계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주요 산업계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은 올해 국제유가를 연평균 배럴당 80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사업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날 장중 한때 130달러를 넘어선 유가가 최대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각 기업은 사업계획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서방이 러시아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경우가 최악이다. 러시아는 글로벌 원유 생산량의 12.6%를 차지해 그 여파가 단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화학업계에서는 고유가로 원재료인 납사(나프타) 가격이 올라 실적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납사 가운데 외국산 비중은 약 20%고, 이 중 23%가 러시아산으로 가장 많다. 이달 첫째 주 납사 가격은 t당 1112달러로, 주간 기준으로 22.1%나 뛰었다.

 

정유업계에 유가 상승은 ‘양날의 검’이다. 일단 1분기 정유업계 실적은 큰 폭 상승이 예상된다. 최근 정제마진이 강세인 데다 고유가로 정유업체가 저장해 둔 원유 비축분의 재고 평가이익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장부상 이익으로, 향후 유가 하락기에는 반대로 재고 평가이익이 줄어든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제유가 상승 시 중화학공업 위주로 상대적으로 비용 상승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해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며 “유가는 1%만 변동이 생겨도 급등하는데 10% 이상이 금수조치 되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과거 오일쇼크 수준의 파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거론 중인 유류세 20∼30% 한시 인하나 비축유 방출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석유류에 붙는 모든 세금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은행 제재에 따른 국내 기업 피해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날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벨라루스 국영 버스 완성차 업체와 부품 공급계약을 체결한 A사의 경우 서방의 러시아 은행 제재에 따라 달러나 유로화 결제가 불가능해 대금 70%를 위안화로 받기로 했으나 이를 받을 방법이 없어 난감한 상태다.


우상규·남정훈·구윤모·나기천·송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