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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9세의 정치신예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30대가 신당을 만들어 1년 남짓 만에 단숨에 대통령까지 거머쥐었다. 5년이 지나 그는 재선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11일 폴리티코 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프랑스 대선후보들 중에서 마크롱이 27%의 지지율로, 17%에 머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다.
이 조사에서 마크롱은 결선 투표를 가정한 여론조사 지지율에서도 56%를 얻어 르펜(44%) 대표를 크게 앞질렀다. 다음달 10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율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24일 2차 투표를 치른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등록 마감일 하루 전인 3일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수개월 전부터 여타 후보들은 선거 운동에 돌입했으나 마크롱의 지지율은 떨어질 줄 몰랐다. 지금 기세라면 제5공화국 역사상 샤를 드골(1959∼1969년 재임), 프랑수아 미테랑(1981∼1995년 재임), 자크 시라크(1995∼2007년 재임)에 이어 4번째 연임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노란조끼’ 시위로 퇴진 위기까지 몰렸던 마크롱은 어떻게 지지율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적수 없는 대권 1위 후보가 됐을까.
◆경제성장률 52년 만에 최고… 정부 부채는 과제
마크롱의 가장 큰 호재는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다. 프랑스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이미 지난가을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도달했다. 2020년 코로나19 충격으로 8%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이를 완전히 회복한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GDP 성장률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21년 말 프랑스의 GDP 성장률은 100.7을 기록해 독일(99.6), 이탈리아(99.5), 영국(99), 스페인(94.9)을 앞질렀다.
프랑스의 지난해 경제성장률 잠정치는 7%를 기록했다. 196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업률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 데 더해 1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인 8%까지 내려왔다.
마크롱은 재선 성공을 위해 제조업 부활에 큰 공을 들여왔다.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다시 불러들이고자 지난 한 해만 8억3000만유로(약 1조1000억원)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 같은 제조업 지원책에 관해 “프랑스 경제를 위해 우리가 한 전략적 선택은 옳았으며, 대통령의 임기 말에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창업 분야도 활기를 띠고 있다. 2017년 이후 프랑스에서 탄생한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기업은 25곳에 달한다. 마크롱의 대선 캠프에서 선거 유세를 지원하는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는 “마크롱 정권 이후 창업의 열기가 밤낮없이 계속되는 모습”이라며 “마크롱은 규제를 단순화해 안정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반면 마크롱의 경쟁 후보들은 높은 국가 부채를 지적한다. ‘프랑스 최초 여성 대통령 탄생’을 구호로 내건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는 올해 프랑스의 국가 부채가 GDP 대비 116%에 육박해 마크롱이 나라를 망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낮은 실업률, 높은 GDP 성장률 등 통계 지표와 달리 서민들은 고물가에 허덕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프랑스계 은행 나틱시스의 패트릭 아르투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에서 소매업과 자영업자 부문은 여전히 상황이 안 좋다”며 “정부가 최근 물가 폭등을 완화하기 위해 150억유로 이상을 지출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고 분석했다.
◆극우 후보의 친러 성향, 마크롱은 반사이익
마크롱의 높은 지지율 중 일부는 경쟁 후보들의 악재에서 비롯했다. 2017년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과 맞붙은 극우 성향의 르펜 후보가 친러시아 성향이라는 점이 대표적이다. 르펜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동경해왔다. 러시아의 크름(러시아식 표기 크림)반도 병합 때도 푸틴을 옹호했고, 2017년 대선 직전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깜짝 회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러시아 은행에 대선 자금으로 쓸 3000만달러를 대출해 구설에도 올랐다.
극우 성향 전직 언론인 에릭 제무르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친러 인사로 선거 유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작다고 점쳤다. 동시에 침공설을 제기하는 미국을 맹비난했다.
이들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르펜은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뒤 성명을 내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반대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러시아의 침공은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단죄돼야 한다”며 “러시아에 즉각적인 군사 작전 중단을 요구한다”고 했다. 제무르도 선거 유세를 이어가며 한 강연에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 두 후보의 친러 성향이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에서 지지율을 깎아 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인 클레망 본 외교부 유럽 담당 장관은 “르펜과 제무르 모두 일관되지도 않으며 신뢰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피스 메이커’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프랑스가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이라는 점을 활용해 중재 노력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전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인 제라르 아로는 “마크롱은 평화적인 해법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서방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대선 후보로서 지지율뿐 아니라 마크롱 정권에 대한 지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칸타르가 이달 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정권 지지율은 45%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조사 대비 5%포인트 급등한 수치이자 동시에 2017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최대 약점은 ‘주피터’ 이미지… 인간적 면모 강조에 노력
지금에야 마크롱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해결사’ 이미지를 자처하고 있지만 한때 그의 별명은 로마의 최고신 ‘주피터’였다. 취임 초기 권위주의와 불통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2018년에는 유류세 인상 방침이 반발을 불러 노란조끼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8주간 시위가 이어지면서 마크롱 지지율은 20% 초반대까지 추락했다.
마크롱의 성향이 프랑스 정치 시스템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다른 유럽 나라와 달리 대통령제인 프랑스는 대통령 한 사람의 권한이 막대하다. 여기에 마크롱의 독단적인 성향이 더해져 권위주의가 증폭된다는 설명이다.
빈센트 마르티니 니스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서구 국가 중 프랑스 대통령만큼 정치인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된 정치 시스템은 없다”며 “마크롱 집권 5년간, 특히 노란조끼 사태 당시 대통령제에 대한 의구심이 훨씬 더 표면화됐고, 이 체제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마크롱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 이미지를 최대한 지워야 한다고 제언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 평론가인 장 가리제는 “마크롱의 목표는 그가 가진 권위와 무관하게 본인이 선량한 지도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크롱 본인도 스스로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엘리제궁에서 사전 녹화 인터뷰를 2시간 동안 한 뒤 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부터 전파를 타게 한 것도 재선 전략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NYT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주피터 이미지가 정치적 짐이 된 마크롱이 당시 인터뷰에서 본인이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이미지 메이킹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