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시간이 부족한데도 어쩔 수 없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마지못해 대답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나둘씩 일이 쌓이면서 마음 에너지가 고갈되는 걸 느낀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지, 분명하게 말하면 되잖아!”는 올바른 말이기는 하지만 실용적이진 않다. 무리한 요구라면 당당히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성장 지향적인 사람이라면 “네,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고, 성과 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면 “아니요”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 회사에서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고 끝내 번아웃이 생기게 만드는 상황은 대부분 속으로는 힘들어서 거절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네”라는 대답으로 자신을 몰고 가 버린다.
이럴 때 우리는 ‘가볍게 약속하기’를 익혀두면 좋다. “제가 그 일을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잘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본 뒤에 답을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습관적으로 “예”라고 하지 말고 그 일까지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한지 점검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하루 이틀 후에 “최선을 다해서 그 일도 맡아서 해보고 싶지만 곰곰이 제 상황을 따져보니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곧 마감이라 도저히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어렵습니다. 널리 이해해주십시오”라고 하면 듣는 이는 아쉽겠지만 그래도 “그럼 어쩔 수 없지”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를 믿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 일을 하면 제 업무를 진행하는 데 곤란이 생길 것 같습니다”라고 하거나,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해야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업무에 더 충실하는 게 타당하다고 여기십니까?”라고 넌지시 거절하는 기술을 익혀두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부탁하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중에 시작해도 될까요?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쌓여 있어서 당장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며 적당히 미뤄보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눈치 빠른 상사라면 이 말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받아들일 테고, 공감 능력 떨어지는 상사라면 나중에 또 시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상담하다 보면 내담자가 “나는 거절을 잘 못해요.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요”라고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듯 여기는 이들을 자주 본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맥락에 속박되어 있다. 상사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선한 마음 때문에, 인정받아 승진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부탁한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예스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면 전날 푹 잤더니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라 있어서 ‘이런 상태라면 무슨 일이든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들뜬 기분에 휩싸여 “예”라고 답했을 수도 있다.
자신을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관찰해보자. “거절 못 하는 내가 싫어요”라고 할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이해해주자.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 많은 내 자신을 나라도 다독여주자’라고 마음먹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