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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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변방국 외교에서 선진국 외교로

한국은 19세기 말 개항 이래 150여년간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에 ‘편승’한 변방국 외교를 해왔다. ‘편승외교’를 다른 말로 하면, ‘따라쟁이 외교’다. 분단된 약소국 한국은 냉전을 거치면서 초강대국 미국만 바라보는 단선적 편승외교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외교는 냉전이 끝나가던 1990년대 초에야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하지만 본질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건 대규모 전쟁 등 큰 문제를 단 한 번도 독자적으로 처리해본 적 없었고 경제·군사력 모두 약소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에, 급부상한 중국과 일본, 북한(북핵) 문제 대응 위주로 미국만 바라보는 편승외교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과 언론, 국민들의 기대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생생히 보여주듯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꿈틀대고 있다.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도 마찬가지다. 많은 나라가 제자리와 역할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전쟁과 같은 심각한 문제에 대해 타국 눈치만 보고,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지나간 다음에야 입장을 정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은 경제·군사적으로 G7(주요7개국) 수준으로 발전했고, 동맹국 미국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 몫을 챙길 수 없다.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편승외교를 지속하려 할 경우 우방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백범흠 연세대 겸임교수 전 주프랑크푸르트총영사

한국이 편승외교를 해왔던 것은 경제·군사력이 보잘 것 없었던 데다가 패권국 눈치만 보아온 변방국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교부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G7 국가 모두 외교장관이 수석장관직을 맡고 있는데, G7 수준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외교부는 왜 이렇게 규모가 작고 정치적 위상도 낮을까? 군병력 포함 750만명의 국민(동포)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무역액이 1조2600억달러에 달하는 나라 외교부 위상이 왜 이렇게 보잘 것 없을까? 나라는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선진국인데, 외교를 보는 우리 사회 시각은 왜 ‘싸우면서 건설하던’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을까?

외교부 선진화는 우선 한국과 규모가 비슷한 G7 캐나다, 이탈리아 수준으로 우리 외교부 위상을 제고하고, 규모도 키우는 것이다. 변방국 외교로는 전쟁 같은 거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외교장관직을 일본, 독일 등 G7과 같이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그리고 장관에는 국제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군사안보와 금융·경제 등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G7 국가 외교부와 같이 인도-태평양, 유라시아 등 세계 각 지역과 재외국민 보호 등 기능을 담당하는 차관, 차관보급 이상 고위직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경제·통상·군사 문제 등을 종합 담당할 부서를 신설, 복합 안보위기에도 대처해야 한다. 선진국 외교의 시작은 우선 우크라이나 난민 1만명 정도를 수용해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는 선진 인권국가로서 인도적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물론,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백범흠 연세대 겸임교수 전 주프랑크푸르트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