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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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당선인과 통화하는 바이든 뒤편 그랜트 초상화 무슨 뜻?

美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 지지" 의사 표명
옛 적장 끌어안은 ‘포용’과 ‘통합’의 행보도 당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SNS에 “윤석열 한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는 모습”이라며 올린 사진. 바이든 대통령 뒷편 벽에 내걸린 큼직한 인물 초상화의 주인공은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전 대통령(1869∼1877년 재임)이다. 바이든 대통령 SNS 캡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첫 전화 통화를 한 가운데 통화 당시 바이든 대통령 뒷편에 배경으로 걸려 있던 큼직한 초상화의 주인공에 눈길이 쏠린다. 미국의 제18대 대통령(1869∼1877년 재임)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인데, 바이든 대통령이 그를 통해 윤 당선인과 한국 국민들한테 건네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눈길이 쏠린다.

 

◆남북전쟁 승리 주역 내세워 ‘韓 주도 통일’ 지지

 

바이든 대통령은 윤 당선인과의 통화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며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통상의 사진은 대통령이 수화기를 붙들고 환하게 웃거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이 사진은 대통령 뒷편 벽에 걸린 인물 초상화가 더 부각돼 보는 이들의 시선을 붙든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율리시스 그랜트 전 대통령(공화당)이다. 바이든 대통령(민주당)과는 아일랜드계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는 점 말고는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그랜트는 군인 시절에는 남북전쟁(1861∼1865)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대통령으로서는 뚜렷한 업적이 적은 편이다.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백악관이 그랜트의 초상화를 통해 윤 당선인, 그리고 한국인들한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이다.

 

일단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나눈 대화 속에서 의미를 추론해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을 직접 언급하며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위협을 다루는 데 있어 한·미 양국이 긴밀히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남북 분단 상태인 것처럼 미국도 1860년대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벌인 아픔이 있다. 결국 그랜트가 지휘하는 북군이 남군을 쓰러뜨리고 전쟁을 끝내면서 미국이 통일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랜트 초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북한의 위협 억제’, 그리고 ‘한국 주도의 통일 지지’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1865년 4월 미국 남북전쟁에서 이긴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왼쪽)가 패장인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와 악수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비록 전쟁은 남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으나 그랜트는 리 등 남군 주요 자휘관들한테 어떠한 보복도 가하지 않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옛 적장 끌어안은 ‘포용’와 ‘통합’의 행보도 당부

 

이와 별개로 남북전쟁 이후 그랜트가 보인 ‘포용’과 ‘통합’의 행보를 강조하려 했던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 미국사 전문가는 “1865년 로버트 리 장군 등 남군 지휘부가 항복하자 북군 사령관 그랜트는 관대한 항복 조건을 제시하여 이들이 전후에 반역죄로 기소되는 것을 막았다”고 귀띔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와중에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적폐청산, 정치보복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해 ‘그러지 말고 그랜트처럼 포용과 통합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랜트와 바이든 대통령은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란 것 말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전임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 전임자가 후임자의 취임식 참석조차 거부한 점이 그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2017∼2021년 재임)은 ‘선거 사기’, ‘대선 무효’ 등을 외치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결과에 불복한 데 이어 지난해 1월 20일 새 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그랜트 역시 전임자인 앤드루 존슨 전 대통령(1865∼1869년 재임)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그랜트의 취임식장에서 존슨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남북전쟁 말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북군 지휘부와 남군을 쓰러뜨릴 전략을 토의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The Peacemakers)’. 왼쪽부터 윌리엄 셔먼 장군,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링컨 대통령, 데이비드 딕슨 포터 제독. 미 합동참모본부 SNS 캡처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전임자의 축복은커녕 ‘저주’ 속에 취임해야 했던 자신과 그랜트의 처지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을 법도 하다. 그랜트와 바이든 두 대통령이 나란히 있는 한 장의 사진에서 정치세력 간 용서와 화합, 화해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