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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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시간 불탄 역대 최악 산불… 5㎜ 봄비가 잠재웠다

‘동해안 동시다발 산불’ 최장·최대 피해 기록

서울 면적의 41% 해당하는 규모
피해구역 넓어 잔불정리 시일 걸려
이재민 지원·산림 복구 ‘첩첩산중’

정부, 지역 주민들 피해 조사 착수
임시조립 주택·금융 지원 등 방침
동해안 대형 산불 발생 열흘째인 13일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 일대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울진·강원 삼척 일대 산불이 13일 비가 내리면서 마침내 주불이 꺼졌다. 지난 4일 오전 11시17분 울진 도로변 야산에서 원인 모를 산불이 발생한 지 213시간43분 만이다. 이번 산불은 국내 역대 최장 시간 이어진 산불로 기록됐다. 울진·삼척 산불은 짙은 연무와 험한 산세, 거센 바람 등으로 좀처럼 잡히지 않다가 이날 5㎜가량의 비가 내리면서 겨우 진화되는 모양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울진 산불 주불을 진화했다”면서 “울진군 4개 읍·면, 삼척시 2개 읍·면이 잠정 피해 지역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울진·삼척 산불(피해면적 2만923㏊)과 비슷한 시기 번진 강원 강릉·동해 산불(4000㏊) 등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로 동해안 일대 2만4923㏊ 면적의 산림이 불에 탔다. 서울 면적(6만520㏊)의 41.2%에 해당하는 산림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최대 산불 피해로 기록된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2만3794㏊)을 뛰어 넘는 수준이다.

이번 산불은 역대급 겨울 가뭄으로 산림이 바짝 메말라 있는 데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화재가 발생해 장비·인력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장기화했다. 여기에 낙엽과 소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강풍이 불면서 확산 속도 역시 유난히 빨랐다. 이태형 구미대 교수(소방안전)는 “산림 복구 과정에서 물을 많이 머금고 잎이 넓어 화재에 잘 버티는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를 능선에 띠처럼 둘러 심으면 산불 확산 차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석 산불정책연구소장 역시 “산불의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소능선을 중심으로 화재 진화선을 만들어야 한다”며 “방치된 숲을 집약적으로 관리하고 산불에 강한 숲으로 조성해 산불의 도심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레펠로 산불 현장 접근하는 진화대원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이 12일 경북 울진 응봉산 상공에서 헬기와 연결된 로프를 타고 산불 현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산림당국은 13일 오전 9시를 기해 울진·삼척 산불 주불 진화를 선언했다.
산림청 제공

울진·삼척 산불은 한때 불길이 울진 한울원전과 금강송 군락지, 국내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인 삼척 LNG기지 등 주요 시설을 위협해 당국에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울진 산불이 처음 난 지난 4일에는 오후 3시쯤 최초 발화지점에서 11㎞ 떨어진 한울원전 울타리 주변까지 불씨가 날아들었다. 같은 날 오후 5시쯤에는 국내 최대 LNG 생산기지인 삼척 원덕읍 호산리 LNG기지 후문 1㎞까지 불길이 근접했다. 다행히 밤사이 강풍이 잦아들면서 한울원전과 LNG 기지를 위협했던 화마는 물러났다. 이번 산불의 최대 고비는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보호였다. 소광리 일대에는 불길이 4차례 침범했으나 산림당국이 인력·장비를 집중 투입해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다.

13일 비가 오는 가운데 강원 동해시 산불 피해지역에서 주민들이 산불로 소실된 주택을 굴착기로 정리하는 등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산불은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우선 피해구역이 넓어 잔불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민 지원과 산림 복구도 문제다. 경북도는 이재민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을 전체가 산불로 타버린 북면 신화2리와 죽변면 후정리 해양바이오산업단지 유휴부지에 임시조립주택 70채를 설치한다.

지난 12일 경북 울진 응봉산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이 헬기를 타고 산불 현장에 들어가 불을 끄고 있다. 산림청은 13일 오전 9시에 울진·삼척산불 주불(큰불) 진화를 선언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제공

울진군은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에게 긴급복지 생계비를 지원한다. 1인 가구는 48만8800원, 4인 가구는 130만4900원이다. 정부는 이재민 긴급구호 및 주거, 생활 안정, 농·임업인 영농 재개, 세제 및 금융 등 분야별로 대책을 마련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재민에게 2년간 임차료 50% 감면 조건으로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주택 복구를 희망하는 경우 최대 8840만원까지 재해주택 복구자금 융자를 지원한다. 사회재난에 따른 주거비 지원 명목으로 주택 모두가 불에 탄 경우 가구당 1600만원, 절반이 소실됐을 경우는 800만원을 지원한다.


울진·대전=배소영·이영균·강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