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는 스트레스다. 운전자라면 약속 시간 전에 해당 건물에 도착하고도 빈 자리를 찾지 못해 지각 해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빈 자리를 찾아 지하 주차장을 헤매던 카이스트 출신의 정보통신공학 박사는 신호가 잘 닿지 않는 지하에서도 빈 곳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떠올렸다. 수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를 현실로 구현했다. 지난달 25일 실내 내비게이션 서비스 ‘워치마일’을 개발한 베스텔라랩의 정상수(42) 대표를 경기 안양시 동안구 지사에서 인터뷰했다.
◆아파트 주차장 빈 자리 찾다 창업 아이디어 발견
정 대표는 베스텔라랩의 서비스에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워치마일은 오프라인에 있던 주차장 정보를 온라인상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빈 주차면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운전석에 앉아서 가려진 부분 있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큰 주차장에서 빈 자리를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은데, 티맵이나 카카오 내비처럼 GPS가 닿지 않는 곳에도 최적의 경로를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실내 내비게이션을 떠올린 것은 몇년 전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2016년, 아파트 주차장에서 항상 주차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다른 사람이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 한 층 더 내려가서 주차하고, 다른 날에도 그곳에 차가 있는지 살펴보고 또 내려가고 하다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강남같은 도심에 갈 때면 미팅 시간이 임박했는데 빈 주차면을 찾기 위해 20분씩 허비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실내 주차 내비게이션을 떠올리게 됐다”고 회고했다.
카이스트에서 무선 네트워크 관련 논문(무선 메쉬 네트워크를 위한 자율 부하 분산 필드 기반 애니캐스트 라우팅 프로토콜)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대표는 학위 논문을 쓰면서 주차장에서 실험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사업할 때도 이렇게 주차장에서 뭔가 하게 될 지는 몰랐다. 주차장 건물이 무선네트워크 상에서 데이터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경로로 가야할지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전국 30곳 도입중... 인천국제공항·서울역 등 랜드마크로 확대중
졸업 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와 KT에서 무선네트워크를 연구했던 그는 연구와 현실의 접점을 찾았다. 정 대표는 “수리과학연에서 세계 최초의 스마트 노드 제품을 개발했다. 이후 대기업에서 이를 사업화하는걸 기대했는데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기업으로 옮겨 실제 제품화 되는 과정 등을 경험했지만 마지막 목마름이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창업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베스텔라랩의 주차 내비게이션 서비스 ‘워치마일’은 국내서 가장 큰 규모의 천호역 공영주차장과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주차장, 안양시 평촌 어바인퍼스트 아파트 등 전국 30여곳에 도입돼 있다. 그는 “현재 서울시와 안산시, 울산시 등 관공서에도 들어가고 있고, 인천국제공항, 백화점 등 큰 랜드마크 건물과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건설사 사옥이나 아파트 등에도 도입을 논의중”이라고 했다.
실내 주차장에서 어떻게 빈 자리를 찾는걸까. 정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3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보는 녹색·빨간색 주차유도관제가 있으면 그 데이터에 베스텔라랩 시스템을 연동한다. 이를 통해 빈 주차면 같은 오프라인에서 필요한 정보를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여기에 해당 구역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측위 센서가 설치돼 있다. 이는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실내에서 GPS를 대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주차유도관제 장비가 아예 없는 경우에는 CCTV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영상 데이터를 가공해 동일한 서비스 형태로 표출한다. 세 번째는 자율주행차용 솔루션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차가 인식할 수 있는 지도 형태로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 과정의 어려움, 지하주차장서 오랜 시간 ‘역공학’ 노력으로 극복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그는 “주차장의 녹색·빨간색 불이 단순해 보이지만 이를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차장비 납품 업체는 납품을 하고 나면 끝이고, 관리를 통해 현상만 유지하려고 한다. 데이터가 어떤 필드에 있고, 어떤 형태로 표출되는지는 업체마다 모두 다르다. 또 제품마다, 개발자 마다 각기 다른 형태를 이를 하나씩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리버스엔지니어링이라고 하는 지난한 역공학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그는 “주차장에 가서도 정작 데이터를 가져오려고 하면 의사결정 주체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건물주가 우리 시스템을 구매했는데 기존 업체들이 협조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작은 건물은 위임 받은 업체가 있다고 하는데 이를 찾기도 힘들었다. 우리 서비스에 공감하면서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는 고객도 많이 만났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 다가올 자율주행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율주행차를 위한 실내 내비게이션도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를 조금만 가공하면 자율주행차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주차는 스스로 할 수 있지만, 빈 주차면에 대한 정보는 없다. 때문에 사람처럼 주차장에서 헤매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해 빈 자리를 찾는 시행착오 영역을 없애준다. 또 주차장 내에서 통로 구간에 대한 경로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어린이나 반려동물 등 운전자 입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요소가 있을 경우 미리 폐쇄회로(CC)TV를 통해 파악한 정보로 자율주행차에 이 위험정보를 같이 전달해 차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자 꿈꾸던 공학도... “세상의 별처럼 차를 연결하겠다” 포부 이뤄
정 대표는 어린 시절 막연히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소설 ‘어린왕자’를 좋아한다는 그는 회사 이름도 이동수단을 뜻하는 비히클(Vehicle)과 별을 의미하는 스텔라(Stella), 여기에 연구소인 랩(Lab)을 합성해 만들었다. 그는 “지구상에 수 많은 별처럼 이 차들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베스텔라랩은 2018년 8월 설립됐다.
베스텔라랩은 사업 영역을 해외로도 확장하고 있다. 최근 ‘한·인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해커톤’에서 안개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률을 낮추는 프로젝트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인도 측과 소통중인데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 같다. GPS 신호가 닿지 않는 터널 안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차량이나 교통 흐름 정보를 예측해 다른 운전자들에게 전달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현재 인도를 포함해 미국, 싱가포르, 홍콩, 스페인 등에도 사업 확장을 타진중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스타트업 아우토반’에도 2년 연속 참여했다. 그는 “벤츠 차량의 매립형 단말기에 자사 솔루션을 넣는 걸 하고 있다”며 “차량 내비는 GPS 신호가 끊어지는 곳에서 안내가 종료되는데 우리는 이후에도 길 안내가 이어지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 벤츠 본사와 계속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중개소 직원도 회사 비전보고 이직... 인재 모으며 성장중
베스텔라랩은 직원들의 면면도 독특하다. 현재 23명인 직원은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정 대표는 “시니어급 인력이 최근 많이 합류하고 있다”며 “차량공유서비스 업체부터 자동차 관련 대기업, 주차관련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이 모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을 뽑는 기준에 대해 “우리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인재인지, 꿈이 있는지, 융화가 잘 되는지 등을 살핀다”고 했다. 특히 베스텔라랩의 비전을 발견하는 직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회사 사옥을 소개하던 부동산 중개소 한 직원은 우리 회사에 대해 알고나서 이직했다”며 “주차장은 부동산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라 채용했는데 현재 자신의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리즈 A 투자를 진행중인 베스텔라랩은 업계에서 반응도 좋은 편이다.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차별화된 게 느껴지고 대기업이 당장 뛰어들기 어려워 경쟁력이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창업 모든 과정 즐겨라... “모빌리티의 미래 될 것“ 당찬 포부
뚝심 있어 보이는 정 대표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회사를 운영하며 어려웠던 때를 묻는 말에 “항상 어려웠다. 사람 간의 관계도 어렵고, 투자를 받고 운영을 하는 것도 늘 도전이었다”면서도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 대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마음이 있다면 너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라고 말하고 싶다”며 “나중에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을 다 즐겼으면 좋겠다. 절박함이 포함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고 싶은걸 하는 것도 좋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부분도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창업자들이 막연하게 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뛰어든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실패확률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준비했다는 듯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가 되겠다”고 짧고 굵게 답했다. 정 대표는 기존 대기업들이 대가 없이 이용자의 위치 정보를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이용하지만 베스텔라랩은 이를 활용해 다시 소비자에게 보상하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빠르고 효율적인 주차로 시간을 아끼는 것이 이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받은 정보를 되갚는 방법이다. 그는 앞으로 “자율주행차 플랫폼 사업중 하나가 주차장이고 나아가 물류센터 창고, 선박이나 항만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싶다”며 “GPS가 닿지 않는 실내 공간이라면 어디든 이용자들에게 길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