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내 북악산 기슭의 한 암벽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복스러운 땅이라는 의미다. 1990년 청와대 관저 신축 공사 중에 발견된 것인데, 당시 전문가들은 300~40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문구는 청와대 자리가 풍수지리상 ‘명당’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졌다.
천하제일복지를 뒤로하고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 밖으로 나올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윤 당선인 측은 외교부가 입주해 있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경호와 비용 등을 따졌을 때 국방부 청사가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국방부 청사 이전은 약 500억원, 정부서울청사 이전은 약 1000억원이 소요된다고 보고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광화문 집무실’을 약속한 바 있다. 다만 경호와 부지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집무실 위치를 두고 매번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청와대 구조의 비효율성이다. 현재 청와대는 노태우 정부가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면서 구조가 결정됐다. 주요 건물로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대통령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관저, 참모들이 일하는 여민관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건물간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편이다. 본관과 여민관 사이는 직선거리로 500m에 불과하지만, 도보로는 약 15분이 소요된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각방’을 쓰다 보니 청와대 본관은 불통의 상징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건축가인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저서 ‘김진애의 건축 이야기’에서 “바로바로 묻고 듣고 보지 못하면 활동 양식이 경직되기 마련”이라며 “권력자가 따로 있을수록 가까이 다가서는 접근성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접근 가능한 측근의 문제가 생기고, 측근의 문제가 생기면 권력의 쏠림과 왜곡 현상이 뒤따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상당수가 청와대의 분산 구성을 불편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관에 일부 비서진을 배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민관에 집무실을 별도로 설치해서 자주 사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 청와대 구성을 대폭 고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세월호 참사 당일 본관이 아닌, 관저에 있는 간이 집무실에서 근무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을 아예 여민관으로 옮겼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청와대 구조의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 백악관 서쪽 별관을 지칭하는 ‘웨스트 윙(West Wing)’에는 대통령과 참모진의 집무실이 다닥다닥 모여 있다. 대통령과 비서진의 업무 공간을 가까이 둬서 업무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의 면적도 76m²(23평)로, 청와대 본관 집무실 168㎡(50평)의 절반도 안 된다.
다만 윤 당선인의 국방부 이전안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CBS라디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본관을 벗어나 비서동에 집무실을 차려놨다”며 “참모들과 논의하고 토론하고 회의할 수 있는 구조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 출신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tbs라디오에서 “청와대에 위기관리센터가 있는데, 테러나 자연재해, 국가안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다”며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안보 자산들이 대부분 무능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