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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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계속 중 회사 조직변경의 처리 [알아야 보이는 법(法)]

‘회사’란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한 법인을 이르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아마도 ‘주식회사’를 떠올릴 것입니다. 주식회사는 여러 종류의 회사 중 하나로, 상법에는 이외에도 합명회사와 합자회사, 유한책임회사, 유한회사 등이 회사의 종류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회사의 상호에는 그 종류에 따라 합명회사·합자회사·유한책임회사·주식회사·유한회사라는 문자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회사는, 사원의 개성과 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지 아니면 사원이 출자한 재산을 기초로 하는지에 따라 전자는 인적회사, 후자는 물적회사로 각각 구분하기도 합니다. 인적회사는 사원이 직접·연대·무한책임을 지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여합니다. 반면 물적회사는 사원이 간접·유한책임을 지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사원이 아닌 기관이 회사의 업무 집행을 담당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차이점입니다.

 

상법상의 회사들을 위 기준에 비추어 보면 합명회사는 전형적인 인적회사, 합자회사는 물적회사의 요소가 가미된 인적회사, 유한회사는 인적회사의 요소가 가미된 물적회사, 주식회사는 전형적인 물적회사라고 각각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개정 상법에 새로 도입된 유한책임회사는 인적회사의 성격이 강하지만 물적회사처럼 사원이 유한책임을 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취득한 주주가 사원이 되고, 회사의 실제 경영은 주주가 선임한 이사 등 경영진이 하는 이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상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회사의 재무제표 등 각종 공시 의무가 있어 다른 종류의 회사에 비해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주주도 출자금(주식인수·양수대금) 외에 회사 채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주식거래를 통해 손쉽게 출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투자금 조달이 용이한바, 그 점이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 형태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 또는 유한책임회사의 형태로 법인을 설립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구글코리아와 애플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샤넬코리아, 구찌코리아, 프라다코리아 등 상호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그 예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경영의 폐쇄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는 사원이 출자지분 내에서만 유한책임을 진다는 측면에서 주식회사와 공통점이 있으나, 투자 유치에 유리한 각종 공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모기업에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별도로 투자를 받을 필요성이 적은 외국계 기업으로서는 굳이 경영사항을 공시하는 등 외부로부터 회사 경영을 감시받아야 하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폐쇄성은 가족 구성원이 회사를 소유하면서 함께 경영하는 소위 가족기업도 선호하는 특징입니다.

 

특히 유한책임회사는 사원 총회를 통하지 않고 대표업무집행사원의 단독 결정, 업무집행사원의 과반수 결정, 총 사원의 동의 등을 통해 회사의 각종 사항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신속하고 유연합니다. 그래서 시장과 정책 등의 변화에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스타트업 기업이 유한책임회사의 형태로 회사를 설립되는 일이 잦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주식회사는 영원히 주식회사, 한번 유한회사는 영원히 유한회사이어야 할까요?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가 특유의 폐쇄성과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한 뒤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대규모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 싶을 수도 있고, 반대로 주식회사가 더 이상의 투자 없이도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어 앞으로는 회사의 경영사항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유한책임회사를 주식회사로 회사의 종류를 각각 변경할 수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처럼 회사가 법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그 법률상의 조직을 변경하여 다른 종류의 회사가 되는 것을 회사의 조직변경이라 하는데, 상법은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단 인적회사와 물적회사는 사원의 책임과 내부조직이 다르므로 상호 간 조직변경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물적회사인 유한회사와 주식회사는 상대로 조직변경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유한책임회사는 인적회사의 성격이 강하지만 사원이 유한책임을 지므로 주식회사와 상호 간 조직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조직변경은 법령에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언제든 할 수 있으므로, 회사가 당사자인 소송이 계속되는 도중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주식회사 A가 거래처를 상대로 하는 대금 지급 청구 소송의 계속 중에 조직변경이 이루어져 유한책임회사가 됐다면 위 소송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원고인 ‘주식회사 A’가 없어졌으니 소송은 중단되고 그 승계인인 ‘유한책임회사 A’가 수계하여 계속 진행해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소송의 원고인 유한회사가 소송계속 중에 주식회사로 조직변경한 사안에서, “상법상 주식회사의 유한회사로의 조직변경은 주식회사가 법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변경하여 유한회사로 되는 것이고, 이는 유한회사가 주식회사로 조직변경을 하는 경우에도 동일하다”며 “그와 같은 사유로는 소송절차가 중단되지 아니하므로 조직이 변경된 유한회사나 주식회사가 소송절차를 수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소송수계 신청을 각하하고, 원고의 당사자표시만을 정정하였습니다.

 

회사의 조직변경은 법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사망 또는 소멸(법인)과 달리 소송절차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입장은 논리적으로 당연합니다.

 

다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상호가 바뀌는 것보다 회사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 더 큰 변화처럼 느껴져 마치 당사자가 변경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앞으로는 회사의 종류가 변경되더라도 소송절차를 중단되지 않고 수계신청이 필요 없다는 점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법무법인 바른 정현지 변호사 hyunjee.chung@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