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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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 가야하는 재정당국… 50조 추경 마련 ‘지출 구조조정’ 난관 예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5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우선순위’로 거론하면서 재정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상반기 중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수십조원을 마련한 전례가 사실상 없는데다 본예산을 세부적으로 살펴봐도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이 많아 대규모로 예산을 삭감할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구조조정 대상 사업으로 거론되는 ‘한국판뉴딜’의 경우 문재인정부 하반기 역점 사업이란 점에서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소지도 있다는 전망이다.

 

27일 인수위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2차 추경 재원 조달 방안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국채 발행은 가장 ‘후순위’에 둔다는 방침을 정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적자국채 발행을 검토하지 않는 배경과 관련해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역시 물가상승이 심상치 않은 상황 등을 감안 국채발행을 최소화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수십조원의 예산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특정 사업의 예산을 줄여 꼭 필요한 다른 사업으로 예산을 옮기는 지출 구조조정(재정지출 재구조화)을 단기간에 대규모로 실시한 전례는 최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박근혜, 문재인정부 임기 초반 당선인의 공약이 국정과제로 확정됐을 때 재정당국이 해당 사업에 소요되는 재원을 추계해 지출 구조조정을 검토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임기 5년을 기준으로 예산 확보 방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한두 달 안에 수십조원을 마련해야 하는 지금 상황과 다르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지출 구조조정이 기본적으로 불가피하게 연내 집행이 어려워진 예산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상반기에 섣불리 실시하는 것도 재정당국으로선 부담이다.

 

본예산을 세부적으로 뜯어봐도 손댈 수 있는 예산은 한정적이다. 올해 본예산 규모는 607조7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복지 예산 등 손 댈 수 없는 의무지출을 제외한 재량지출은 304조4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재량지출 안에서도 중앙정부 인건비(41조원), 국방비(40조원)처럼 경직성 예산이 많아 지출 구조조정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부분에 잡혀 있는 예산을 줄여서 수십조원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기재부 관계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안팎에서 지출 구조조정 대상으로 한국판뉴딜, 직접 일자리 사업 등이 거론된다. 인수위 경제1분과의 전문위원으로 윤 당선인의 ‘경제책사’로 불리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간 “한국판뉴딜 등의 비효율적 지출만 줄여도 (50조원 재원은) 충분히 확보 가능한 액수”라고 밝혀왔다.

 

한국판뉴딜은 2025년까지 총 220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올해에만 33조70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뉴딜에 9조3000억원, 인프라 녹색전환 등 그린뉴딜 사업에 13조3000억원, 청년 자산, 주거지원 등이 포함된 휴먼뉴딜 사업에 11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그린 뉴딜 사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된다. 다만 한국판뉴딜 사업 자체가 문재인정부 하반기 최대 역점 사업이란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출 삭감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차 추경 시점 역시 ‘뇌관’이 될 수 있다. 현재 2차 추경 추진 시기와 관련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기재부 안팎에선 “현 정부 임기 중에 불가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판뉴딜 등 현 정부 역점 사업의 예산을 스스로 깎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앞서 인수위원들은 지난 24일 기재부 업무보고 당시 기재부 측에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정당하고 온전한 손실보상이 이뤄지도록 조속히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