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만찬 회동에서 “국정은 축적의 산물이다”, “정당 간에 경쟁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 간의 성공기원은 인지상정”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각종 현안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간 양측의 주요 갈등 원인이었던 대통령실 용산 이전 문제 등에 대해서도 협력 의사를 확인하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다만 코로나19 손실보상 관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임기 말 인사권 행사 문제 등 정치적 이해득실과 맞물린 문제에 대해선 추가 협의 의사만 밝히며,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만남이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회동 직후 통의동 집무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두 분이 인사를 시작으로 2시간 36분 동안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언론이나 국민이 느끼는 갈등을 오늘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서로 존중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장 실장과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상춘재 회동에 배석했다.
이날 회동에선 윤 당선인의 직면 과제인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위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장 실장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지역에 대한 판단은 차기 정부의 몫이라 생각한다’며 ‘지금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집무실 이전 시기에 대해선 구체적 말씀이 없으셨지만 문 대통령이 협조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최근 집무실 이전 문제로 정면 충돌했지만,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자체가 아니라 취임식(5월10일)까지 이전을 완료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계획에 안보 공백 우려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회동이 이뤄지기만 하면 윤 당선인이 구체적 로드맵에 대해 문 대통령과 상의를 한 뒤 협조를 얻어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양측은 다른 현안에 대해선 다소 원론적인 협력 메시지를 내놨다. 특히 양측 모두 회동 전부터 강조한 코로나19 방역 대책과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그에 따른 추경 편성 등에 대해선 “두 분이 공감했다. 실무 라인에서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만 했다.
회동에 앞서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윤 당선인은 무엇보다 민생에 무한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임하려고 한다”며 “영업 제한이나 거리두기같은 행정명령으로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손해배상을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것이 윤 후보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추경 편성과 관련해서도 “국민이 일어설 수 있게 힘이 되고 손을 건네는 것의 당위성은 현 정부도 공감하고 지원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19 방역 관리를 강조했다.
장 실장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인사권 행사 문제에 대해서도 “오늘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를 어떻게 하자는 말은 없었고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해야 할 인사에 대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제가 잘 도우라고 했고, 윤 당선인도 잘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시점에서 추경 편성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득실이 달린 문제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윤 당선인의 의중대로 당장 추경 편성에 나서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 정권 측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올해 들어 이미 추경을 편성한 더불어민주당이 재차 “빠른 추경 편성”을 외치는 데도 정치적 셈법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문제 역시 감사위원 선임 문제는 감사원이 문재인정부에 반기를 들면서 일단락됐지만, 선관위원 임명 등에 따라 양측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갈리게 된다. 양측의 입장 차가 명확하게 좁혀지지 않아 이날 회동에선 실무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원론적 메시지를 내놓게 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해선 두 사람이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고 장 실장은 전했다. 민주당과 현 여권이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반대하는 가운데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서도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입장차가 큰 대립 지점에 대해선 충돌을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MB사면 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과도 관련이 큰 사안이어서 이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극한 대치 끝에 회동이 성사된 만큼 결국 여론 진화용 만남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회동은 정권 이양기 신·구 권력 간 극한 충돌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윤 당선인으로선 정권 이양기에 ‘물러나는 권력’과 지속해서 충돌할 경우 임기 초 국정 운영 동력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어 문 대통령과의 조속한 만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주지 않고 방해하는 모양새로 떠나가는 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