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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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무크 “오스만제국 말기 배경으로 페스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팬데믹 소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가 페스트를 소재로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서양의 일반 여행가들이 쓴 회고록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읽은 뒤였다. 이들 책에는 이스탄불에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그다지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거나 터키인이나 무슬림들, 아시아인들이 페스트에 대해 운명론자 같은 태도를 취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소설 『고요한 집』과 『하얀 성』에 페스트를 다뤘을 정도로 전염병에 대해 수십 년 연구해온 그가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읽어본 결과, 아시아인을 차별적으로 보는 동양주의나 운명주의는 사라지고 대신 방역의 어려움이나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페스트와 전염병이야말로 민족주의 부상과 제국 붕괴 이후 작은 국가의 탄생 등 여러 사회적 변화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1894년에 시작된 제3차 페스트 전염병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쓸 소설은 중세가 아니라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해야겠다고 결정했지요. 3차 페스트 유행 시기에 아시아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이 사망했어요. 특히 중국과 인도에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선 소수만이 사망했고요.”

 

그가 특히 주목하고 자주 읽었던 자료들은, 영국 의사들이 식민지인 뭄바이와 홍콩에서 쓴 보고서들이었다. 영국 의사들은 보고서에서 영국에 있는 상관에게 마치 회고록을 쓰듯 당시 상황들을 써서 보냈다. 어디 어디에 갔고, 어디를 소각했으며, 사람들이 아주 무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등등. 물론 터키 의사들의 회고록이나 과거 터키 주지사들의 회고록도 자주 읽었다.

 

한창 소설을 쓰는 동안, 돌발 상황도 터졌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로 확산했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3년 전부터 소설을 쓰고 있었음에도 자칫 코로나가 퍼지니까 소설을 쓴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기존에 썼던 내용 가운데 장황하게 다뤄진 격리 부문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세계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오르한 파무크가 소설을 썼다고 생각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가 소설에서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요. 이 부분을 축소하려고 애썼어요.”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가 수십년 넘게 구상하고 취재한 뒤 5년간의 간난신고 끝에 새 장편 『페스트의 밤』(민음사)을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의 열한 번째 장편으로, 터키 출간 1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작품은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쳐 가는 추리소설 형식으로 20세기 초 페스트의 창궐을 그린 재난소설이면서도, 민족주의 부상과 제국의 몰락, 독립 국가의 탄생을 그린 정치사회 소설이다.

 

오스만제국 몰락기인 1901년, 동지중해에 위치한 인구 8만의 작고 평화로운 가상의 섬 민게르에서 페스트가 퍼진다. 혼란에 휩싸인 섬에 제국의 황실 화학자이자 방역 전문가인 본코프스키 파샤가 파견되지만, 그는 방역을 제대로 시행해보기도 전에 살해된다. 본코프스키의 죽음 이후 의사인 누리가 아내이자 무라트 5세의 딸인 파키제 술탄과 함께 새 방역 전문가로 나선다. 하지만 방역 조치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과 행정부의 무능으로 방역은 실패하고, 술탄은 서구 열강의 압력에 못 이겨 섬을 봉쇄한다. 엄격한 격리에 반발한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열강의 전함에 둘러싸여 있던 섬은 제국으로부터 독립한다. 페스트에서 시작해 정부 대응과 시민들의 태도, 일상 변화 등 수많은 곡절을 거친 뒤에 제국이 몰락하고 민족주의 및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을, 소설은 다음처럼 상징적으로 묘파한다.

 

“이제 콜아아스는 발코니의 난간까지 다다랐다. ‘이스탄불로부터 전보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를 다스리기 시작하면 방역은 끝날 것이고, 질병은 잠잠해질 것이며, 우리 모두 안전해질 겁니다.’ 그는 진짜 정치인처럼 말했다. 그런 다음 광장을 향해 몸을 돌리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민게르 만세! 민게르인 만세! 민게르 민족 만세!’”(467쪽)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거장 오르한 파무크는 왜 페스트를 다룬 소설을 펴냈을까. 그의 소설들은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독자와 평단 모두 매료하는 것일까. 책을 번역한 이난아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전임 연구원이 한국 기자들의 서면 질의를 취합해 지난 16일 파무크와 대표로 줌 인터뷰를 했다.

 

―모티브가 되는 100년 전 페스트 혼란상과 현재 코로나 팬데믹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는데요.

 

“어떤 것은 비슷하고, 어떤 것은 비슷하지 않습니다. 먼저 비슷한 점들을 말하고 싶군요. 매번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 정부, 주지사, 군수, 대통령, 총리는 먼저 전염병을 부인합니다. 아, 여기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그러면 뭐 감기에 걸려 죽었겠지, 라고 말하면서 믿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당장 조치를 취하고 싶어 하지 않죠. 아무도 현재의 편한 상태 혹은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고요. 전염병은 빠르게 확산되고 사람들이 죽기 시작합니다.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이 전염병을 누가 가져왔지, 중국인 일본인이 가져왔나, 기독교인이 가져왔나 무슬림이 가져왔나 유대인이 가져왔나, 하면서 뒷담화를 시작합니다. 소문이 더 확산되지요. 소문이 무성해지는데도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에, 주지사들, 방역관들은 강경하게 대처하기 시작하죠. 권위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항상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지요.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반발은 방역에 맞선 게 아니예요. 다른 이유 때문이죠. 과거와 다른 점을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접하고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페스트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워했어요. 왜 두려워했을까요? 바로 우리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지요.”

―가상의 민게르 섬이 소설의 배경인데요.

 

“저는 고립된 공간이라는 주제를 좋아합니다. 저의 소설 『눈』(2002년 출간)에서도 폭설이 내려 카르스라는 도시가 고립되죠. 고립된 곳에서는 역사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200년 동안 진행된 혁명이, 민게르 섬에서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죠. 혹은 『눈』에서 도시가 고립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실 『페스트의 밤』은 어떤 면에서 소설 『눈』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페스트의 밤』을 『눈』보다 먼저 구상하고 있었어요. 『눈』을 쓸 때, 이미 머릿속에 있던 『페스트의 밤』의 작은 요소들을 가져와 『눈』에 적용했지요.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은 고립된 공간이라는 점, 정치 소설이라는 것이지요. (아이디어 혹은 모티프를 어디에서 얻으셨는지) 제가 민게르 섬을 쓸 때 영감을 받았던 섬 세 곳이 있습니다. 크레타섬, 헤이벨리 섬과 비윅아다 섬, 그리스령 메이스 섬입니다. 모두 제가 살았던 작은 섬들이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섬은 소설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크레타 섬이고요. 작은 장소들은 제게 동화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페스트의 밤』에도 이런 동화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으면 했지요.”

 

―전염병이 어떻게 제국의 붕괴나 국가의 탄생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요.

 

“소설은 한편으로 페스트의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이 소설은 오스만 제국의 말기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요. 제 소설은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특징이 있어요. 오스만제국 말기의 세세한 그림이지요. 제 생각에 오스만 제국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이 이방인에 의해 붕괴되지 않았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의 내부 갈등으로 인해 쪼개졌습니다. 제국 내 슬라브 민족주의, 그리스 민족주의, 불가리아 민족주의, 아랍 민족주의, 조지아 민족주의 등 수많은 민족주의가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켰지요.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제국의 내적 갈등이었지, 서구 제국주의가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킨 건 아니었던 거죠.”

 

―민게르섬 사람들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아닌 독립국가라는 새 길을 열어준 이유가 뭔가요.

 

“당시 부상하고 있던 민족주의의 영향 때문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궁전에서 나오지 못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파디샤가 제국을 통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대한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전보를 치면서 국가를 통치할 순 없다는 걸 우리는 소설에서 볼 수 있지요. 또한 다른 것도 볼 수 있어요. 그의 고민은 민게르 섬에 사는 제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게 아니라, 먼저 궁전과 자신을 구하는 것이었지요. 술탄 압뒬하미트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 너 이제 왕위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야겠어, 라고 할까 봐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서구 열강들이 원하는 걸 하고, 민게르 사람들이 원하는 건 하지 못하지요. 즉, 이 소설은 민족주의의 뿌리에 관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는 언어라는 겁니다. 소설은 한 민족을 생성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작가 본인이 오르한 파무크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는 점인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요(소설에선 미나 민게를리가 오르한 파무크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다지 큰 이유는 없습니다. 저의 모든 소설에서 제 자신을 등장시키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지요. 히치콕이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서 한 번 쓱 등장하는데,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들에게, 독자 여러분 이것은 오르한 파무크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역사에 몰입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

 

―화자를 작가 자신이 아닌 미나 민게를리로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것을 서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건들을 요약하는 어떤 서술자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만약 이 모든 사건들을 곧장 대화, 말로 천천히 설명한다면 어마어마한 분량이 되었겠지요. 민게를리는 사건들을 여과하고, 요약해 우리에게 전달합니다.(섬의 후손이 섬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인데요) 민게를리는 100년 전 이 모든 사건을 경험한 오스만 제국 왕가 일원의 증손녀입니다. 저는 먼저 오스만 제국의 귀족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민게를리를 통해, 즉 여성 주인공을 통해 설명하는 것입니다.(1901년 민게르 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파키제 술탄도, 21세기 이를 역사소설 형태로 쓴 민게를리도 모두 여성인데, 왜 여성입니까) 작가로서 결심을 한 게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이 사건의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을 택할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그래서 민게르리를 택했죠. 제 소설 『내 이름은 빨강』도 약간은 미망인 세큐레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고요. 저는 중동 지역 남성입니다. 중동 남성들의 전형적이고 형편없는 사고들이 안타깝지만, 저에게도 그런 부분이 존재해요. 이런 제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장 자크 루소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자신의 어머니와 다투는 남자는 항상 부당하다, 라고요. 저는 이 말을 제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죠.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싸우는 중동 남성들은 항상 부당합니다(웃음).”

―카뮈의 『페스트』와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카뮈의 『페스트』를 2년 동안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에게 정치 소설로 읽히고 있습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페스트에 대한, 방역에 대한 사실주의 소설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랑시 도시의 문이 폐쇄된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사건은 1940년대고요. 1940년대에 어떤 도시에 문이 있을 수 있을까요? 혹은 밤에 앰뷸런스가 와 환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카뮈는 이 장면을 나치가 유대인들을 태우고 수용소로 데려가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 『페스트』는 나치들이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묘사한 아주 멋진 알레고리 소설이지요. 저는 카뮈를 존경합니다. 하지만 그가 쓴 것은 정치적 알레고리이고, 저의 소설 『페스트의 밤』은 페스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적인 팬데믹 소설입니다.”

 

알 수 있는 무엇이 인생을 이끌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이 이끌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스물세 살의 오르한 파무크는 자신의 인생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에 폭풍처럼 요동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그림이었다. 펜을 가볍게 쥐면 날 듯한 선이 그려지고 세게 잡으면 굵은 선이 그려지는 드로잉, 드로잉의 강약 조절을 통해 선의 이완과 긴장을 부여하는 화가, 그리하여 화가가 하얀 종이 위에 마법처럼 내놓은 온갖 사물과 사람들의 그림. 화가를 꿈꾸며 15살 때부터 이스탄불 거리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너무나 행복했다. 화가와 건축가를 꿈꾸며 명문 이스탄불 공대 건축학과에도 진학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소설가가 되리라고, 더구나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을 받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열병 같은 스물세 살이 되자, 모든 게 바뀌어버렸다. 돌연 모든 게 싫어졌다. 대신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소설가가 되기로 하고 대학까지 자퇴해 버렸다. 나중에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라고.

 

터키 전역의 철도를 설치한 엔지니어 1세대인 할아버지와, 독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한 외할아버지를 둔 부유한 대가족을 배경으로 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오르한 파무크는 스물세 살 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스탄불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자퇴해 버렸다.

 

1979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7년 후인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의 아들들』을 펴냈다. 그는 이 소설로 오르한 케말 소설상과 밀리예트 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소설 『고요한 집』(1983), 『하얀 성』(1985), 『검은 책』(1990),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 『눈』(2002), 『순수박물관』(2008), 『내 마음의 낯섦』(2014)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써냈다. 2006년 터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수십 개의 상을 수상했다. 현재 터키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팔린 작가로, 그의 책은 이미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스스로 밝힌 ‘바늘로 우물파기’라는 기법이나 전략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인내심이 많은 작가입니다. 아주 천천히 소설을 쓰죠. 『내 이름은 빨강』을 쓸 때, 특히 역사 소설을 쓸 때는, 많은 참고 서적을 읽고, 조사를 하며, 메모를 하고, 나중에 이것들을 거대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하나하나를 합치시킵니다. 제가 인내심이 많은 작가인 것처럼 어쩌면 독자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설 창작의 전략이나 글 쓸 때의 리추얼이 있는지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더 시적이고, 더 우울하며, 더 내적인 마음 상태가 될 때에는 소설의 시적인 부분을 써야지, 라고 생각하고요. 때로 제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마음 상태라면 소설의 이 부분을 써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소설 한 편을 4년 혹은 5년 동안 쓰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안다면, 소설의 어떤 부분을 언제 써야 할지 알게 됩니다. 저는 소설의 1페이지부터 700페이지까지 순서대로 쓰지 않습니다. 첫 30페이지를 먼저 씁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의 밤』 을 쓸 때 첫 부분을 쓴 후 200페이지 이후의 전보국 습격 부분을 썼습니다. 만약 소설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안다면, 소설 챕터들을 이미 나누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소설은 암처럼 사방으로 퍼지고 늘어져 3000페이지가 되겠지요.(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는지요) 쓰고 있던 부분을 그대로 놔두고 다른 장면을 씁니다. 먼저 소설을 쓸 때 구상을 잘 해야 합니다. 미리 챕터를 나누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정하지 않고,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저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먼저 계획을 많이 세웁니다.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시키고, 이후에 챕터들을 나누고, 쓰다가 어느 부분에서 막히면 그 부분을 그대로 두고, 두 챕터 다음 혹은 세 챕터 다음으로 가 씁니다. 그러면 제가 막혔던 부분이 마치 스스로 풀립니다.”

 

―팬데믹으로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모든 사람들처럼, 저도 무척 두려웠습니다. 쓰고 있던 소설이 있어 그것에 집중했지요. 2년 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에 미국에 가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에게 한 학기 강의를 했지요. 이제 약간 두려움이 가셔서 프랑스어로 출간된 『페스트의 밤』 때문에 파리에 가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어와 제 사이에는 투명 칸막이가 있었지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요. 서서히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백신 주사를 세 번 맞았습니다.”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야 합니까.

 

“제 생각에는,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은 두 가지 형태로 변할 것 같습니다. 먼저, 건축적인 측면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 우리가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야 하는 작은 장소나 식당들, 창문이 없는 곳은 그 중요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터키에서 영화관은 아주 치명타를 받았지요. 영화관, 연극장, 행위 예술 등은 치명타를 겪을 것입니다. 직장에도 가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모임도 줄어들고, 대신 화상 회의를 진행하겠지요. 재택근무를 더 많이 할 것이기 때문에 집 안의 질서가 더 중요하게 되고, 직장보다는 집에 투자하는 돈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팬데믹에 전쟁의 비극까지 더해졌는데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과거의 많은 소비에트 연맹 나라들은 나토와 서구, 자유 민주주의 쪽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잊어 버렸어요. 이제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푸틴은 아주 원시적이고 나쁜 방법으로, 내 손에 핵이 있어, 그곳은 과거에 내 구역이었거든, 거기에 간섭하지 마, 핵을 떨어트릴 수도 있으니까, 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 모두를 두렵게 했지요. 과거의 세계로 퇴보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모순이 있으니까요.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국이 다른 나라의 상황에 간섭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다, 거기에 러시아인들이 있다, 라고 해도 미국이 전투기를 띄우지 않고 있지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련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질서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이 고통을 받고 있지요. 푸틴의 공격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원시적이며, 중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중세의 회귀’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아주 유명한 글이 있지요.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습니다.(어떤 지혜를 모아야 하나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답을 못한다는 걸 아는 것도 의미가 있지요(웃음).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인류가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소설가입니다. 정치적 문제에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단지 이러한 상황의 모순을 소설을 통해 보여줄 뿐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한국에서 제 작품이 사랑 받는 게 너무나 좋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독자들이 제 작품을 계속 읽어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국을 두 번 방문했는데요, 다시 가고 싶어요. 팬데믹이 끝나면 가겠습니다. 다시 한국에 가서 박물관들도 다시 방문하고 싶고, 거닐고 싶어요.”

 

열병 같은 스물세 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소설가가 되리라고, 더구나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을 받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는 오르한 파무크. 알 수 없는 또다른 무엇이 다시 폭풍처럼 그의 작가 인생을 휩쓸고 가지는 않을까. 한 번 일어나는 게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다는데.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갈급하게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푸르고 투명한 서울의 하늘은 말이 없는데.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민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