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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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갈등 임시봉합… 4월 23일 개막

준비 과정서 드러난 난맥상

예술감독 선정 불공정 논란에 재심사
‘감독 갑질’ 작가의 진정·해촉 검토까지
문예위·예술감독·대표작가 불협화음

이영철 감독 “욕망이 얽혀… 나도 을 일뿐”
김윤철 작가 “감독이 을이면 저희는 병”
기자간담회 중에도 신경전… 앙금 남아

전시 주제 ‘캄파넬라’→‘나선’으로 변경
일각 “작가 개인의 대관전 흘러가” 지적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 내에 위치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현대 미술의 올림픽 격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우리나라 미술 현주소를 보여줘야 할 한국관이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개막을 한 달 앞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와 ‘예술감독’, 그리고 ‘대표작가’라는 세 주체가 맞물려 기획·운영된다. 그런데 이번 한국관은 사상초유의 감독 선정 재심사라는 불상사가 빚어지는 등 준비 과정에서 난맥상과 주체 간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모양새지만 이번 한국관 전시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태의 발단

 

202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내홍은 정부 산하기관으로 이 사업을 주관하는 문예위가 첫 단추를 끼우는 순서에서부터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작업인 예술감독 공개모집 공고를 지난해 5월 냈는데 지원자 중 4명을 압축해 2차 심사를 예고한 상황에서 돌연 심사가 중단됐다. 공정한 심사를 위한 지원자와 심사위원 간 관계를 미리 점검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민원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단은 신뢰받는 심사가 다시 이뤄지길 바라며 총사퇴를 결정했다.

 

결국 지난해 7월 심사위가 재구성돼 같은 지원자들을 재심사한 끝에, 지난해 8월 이영철 계원예대 교수가 선정됐다. 이 교수는 설치미술가 김윤철 작가를 한국관 작가로 선정해 ‘캄파넬라-부풀은 태양’ 주제로 전시를 펼치겠다는 기획안으로 심사위원단에 낙점됐다.

 

그런데 연말쯤으로 예상됐던 한국관 언론 설명회는 열리지 않고, 돌연 김 작가가 이 감독을 갑질 등의 사유로 문예위에 진정을 넣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라는 막강한 영예와 기회를 준 기획자를 작가가 갑질로 문제 삼은 건 매우 이례적이다. 문예위는 이 감독 해촉까지 검토했다. 2013년 관련 규정에 문예위가 감독을 해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생긴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예위는 회의 끝에, 작가와 감독 등 당사자 간 사과와 재발방지 합의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고 감독 해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미술계에선 “이번 한국관 준비는 사실상 감독의 큐레이팅이 배제되고 작가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데리고 작업하고 있다”는 증언과 우려가 무성했다. 마침 이영철 감독은 갈등이 외부로 알려진 지난해 연말,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 공모에 응모하기도 했다. 한창 전시를 준비할 기간에 다른 기관장 공모에 신청서를 내고 심사를 받은 것이다.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준비 중인 김윤철 작가(왼쪽)와 이영철 예술감독이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어정쩡한 봉합 속에 만들어지는 한국관

 

결국 지난 29일에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한국관 비전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는 그간 세 주체가 쌓아온 총체적 난맥상이 폭발한 자리였다. 한국관 참여 주체들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서는 자리였지만, 우리 미술계가 우려한 이번 사태의 실체가 무엇이며 현재 어떤 상황이고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에 대해 문예위와 감독, 작가 아무도 먼저 설명하거나 언급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문예위 관계자가 “감독님, 작가님 측에서 전시를 같이 뜻을 모아 진행하는 방향으로 저희 쪽에 전달을 주셔서, 어려움이 많긴 했으나 양해해 주시고,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감독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감독이 한국관의 총책임자가 되지 못하고, 문예위가 권한을 가진 현행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기획자가 커미셔너가 아니고 기관이 커미셔너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많은 책임은 아르코(문예위)가 갖고 있다. 한국관 추진단장은 감독이지만, 추진단 안에 있는 상임위원들은 아르코의 원장, 사무처장, 국제교류부장 등이다. 모든 걸 추진단 내부에서 검토하게 돼 있다. 그 부분을 이해하는 과정이 상당히 힘들었다”고 밝혔다.

 

“좋은 성과품을 작가와 협업해 만들어 국가에 납품하는 건데, 이견을 잘 조정해 좋은 결과로 끌어가야 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고 항상 제한된 시간 안에 하는 게 끔찍했습니다. 예산은 늘 부족했습니다. 권한 충돌도 심합니다. 다음달에 전시를 오픈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너무 많이 가져가면 결과물이 좋게 나올 수 없으니 (기획자가) 엄청난 인내와 양보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추진단 핵심 임원들은 아르코로 돼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문제가 있을 때 자칫하면 기획자가 참 어려워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돈, 집행과정, 모든 것에 욕망이 얽혀있다. (총책임자이자 커미셔너인) 아르코가 이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안 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밖에 말씀을 못 드린다”고까지 말했다.

 

이 감독은 김 작가가 주장한 갑질 의혹은 부인했다. 이 감독은 “그 부분은 사실 조금 명확하게 살펴봐야 하는 사안이다. 어떻게 보면 제가 ‘을’”이라고 했다.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욕망을 갖고 있다. 그걸 어떻게 조율하나. 우리가 절대자도 아니고”라고 말을 이어가자 문예위 관계자가 도중에 “감독님. 그만” 하며 발언을 제지하고 기자간담회를 끝내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다른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김 작가는 “감독님이 처음에 꾸리신 사무국의 전문적이지 못한 전시 행정으로 부딪히기 시작했고, 전임 사무국장이 책임지고 나가면서 봉합이 많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갑질이라고 이야기 나왔던 건 한두 개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 같다”, “감독이 ‘을’이면 저희는 ‘병’, ‘정’도 못 된다”고 말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대에 서는 두 주인공이 이 같은 내홍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동안, 이를 주관하는 문예위의 고위직은 보이지 않았으며, 관계자들이 질문이나 답변을 제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작가의 대관 전시’?

 

한국관 기획·운영을 둘러싼 내홍과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날 관계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한국관 개막까지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취지로 입장을 밝혔다.

 

가장 큰 우려는 이번 한국관 전시가 감독의 철학과 안목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실상 ‘작가 개인의 대관전시’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자인 감독의 큐레이팅과 작가의 작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한국관 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큐레이팅이 배제되고 김 작가 스튜디오가 한국관을 대관해 여는 개인전이 돼가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김 작가는 “꼭 그렇진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베니스 비엔날레와 상관 없이 3년 전부터 이 감독님과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며 “작품이 오픈된 뒤 평론가와 기자들이 와서 질문도 던질 것이고 어떤 이야기가 더 풀어져야 하는지 그런 건 이 감독님 몫”이라고 했다.

 

감독이 제안한 주제 ‘캄파넬라-부풀은 태양’가 이날 김 작가가 제안한 ‘나선(Gyre)’으로 변경됐다고 발표된 것에 대해서도 김 작가는 “주제와 제목 관련 갈등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이 처음 제안한 개념인 ‘캄파넬라’도 작품 속에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쨌든 가서 춤은 제가 춰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대표 작가로서 책임감과 고충도 호소했다. 처음부터 모든 일정이 지연되면서 후원금 확보를 하지 못한 탓에 예년보다 예산도 훨씬 적었다고 했다. 그는 “이참에 다 정신차려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 못할 잡음이 많았고 마음고생도 있었지만, 저희(작가 스튜디오)는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달 20일 언론사전공개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전시장 등에서 열린다. 일반 공개는 이달 23일부터 11월27일까지다. 한국관에서는 김 작가 설치작품 7점을 선보인다. 한국관 일부 천장을 뜯어 작품을 설치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할 예정이라고 김 작가는 설명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