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1일 대우조선해양의 박두선 신임 대표 선임을 겨냥해 “임기 말 부실 공기업 ‘알박기’ 인사”라며 강력 비판했다. 그러면서 감사원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에 “정부가 눈독 들일 자리가 아니다”라며 정면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공공기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찍어내기를 하려 한다고 역공을 폈다.
임기 말 인사권 문제를 놓고 신·구 권력이 또다시 정면충돌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회동으로 봉합되는 듯했던 갈등이 박 대표 인사를 고리로 또다시 분출하고 있다. 특히 검찰이 문재인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다른 부처로 수사를 전방위 확대하면서 양측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수위 원일희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대우조선해양은 문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 동창으로 알려진 박 신임 대표 선출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했다”고 직격했다. 이어 “국민 세금 4조1000억원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은 KDB산업은행이 지분 절반을 넘게 보유한 사실상 공기업”이라며 “외형상 민간기업의 이사회 의결이란 형식적 절차를 거쳤다고 하나, 사실상 임명권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자초하는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원 수석부대변인은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5년 전 취임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권교체기 인사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식의 또 하나의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 동생의 동창을 임명한 것은 상식, 관행을 벗어난 것을 넘어 관리·감독 기관인 금융위원회 지침을 무시한 직권남용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인수위는 해당 사안이 감사 대상이 되는지 감사원에 요건 검토와 면밀한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8일 정기 주주총회·이사회에서 박 대표이사 사장을 선임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에 인수위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맞섰다. 청와대 일각에선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국회에서도 인사권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날 선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정권에서 국민 혈세를 축낸 많은 무능한 ‘낙하산’ 인사는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오히려 윤 당선인 측이 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간부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려 한다며 찍어내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이 최근 정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 주요 임명직 간부에 대한 이력정보를 요구한 일을 언급하면서 “공공기관 스스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을 솎아 내라는 무언의 압력”이라며 윤 당선인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문재인정부 초반 불거진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한 검찰 수사는 환경부와 산자부에 이어 다른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들로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은 현 정권 초기에 중도 사임한 교육부, 통일부 등의 산하 기관장들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끝낸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제기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재조명되고 있다.
◆혈세 4조 투입 사실상 공기업… ‘인사 보류’ 인수위 요청도 무시
대표적인 부실기업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이 정권 말 ‘인사 알박기’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선임된 신임 대표이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과 한국해양대 동창이라는 점이 발단이 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알박기 인사’라고 강력 비난했고, 청와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31일 재계와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박두선(사진) 대표이사와 부사장 2명, 사외이사 4명을 신규 선임하는 안을 의결했다. 박 신임 대표는 1986년 입사해 대우조선해양에서만 36년을 근무한 생산 분야 전문가로, 부사장에서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민간 회사인 만큼 절차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이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2015년 이후 국민 세금이 4조원 넘게 투입된 만큼 사실상 공기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2015년 이후 4조2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산업은행 2조6000억원과 한국수출입은행 1조6000억원이다. 2017년 2조9000억원의 신용한도 지원이 더해지며 직간접적으로 총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쓰였다.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박두선 대표가 취임한 것과 관련해 최대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친문 인사로 꼽힌다. 그는 현 정권이 시작된 2017년 9월 산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4년 6개월째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취임 초 문 대통령 경제 멘토 중 한 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앞서 인수위에서 금융 유관기관에 대한 인사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이를 산업은행 등 유관기관에 전달했다. 업계에서는 “인사 자제 요청은 일반적인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차원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는 대우조선해양이 도마에 오르지도 않았고, 대우조선해양이 공공기관도 아니기 때문에 뒤늦게 이러한 논란이 불거지는 게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박 대표가 생산 부문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문성 논란도 일고 있다. 산은은 최근 보유 중인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독과점을 우려한 유럽연합(EU)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앞으로 새로운 회생 방안을 마련하고 독자 생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와 조율이 필요한데, 손발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논란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선임 과정 또한 앞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거쳐 절차대로 진행되고, 공시까지 이미 마무리된 상황이다. 인사의 전반적인 절차는 외부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를 통해 이뤄지는데, 중간에 사임한 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위원이 모두 박근혜정부 당시에 임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된 이상 산은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 작업도 조명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듯 ‘주인 없는 기업’들의 낙하산 인사와 관련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인수위의 ‘알박기 인사’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대우조선해양 사장 선임에 대해 인수위가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며 비난했기에 말씀드린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사장으로는 살아나는 조선 경기 속에서 회사를 빠르게 회생시킬 내부 출신의 경영 전문가가 필요할 뿐, 현 정부든 다음 정부든 정부가 눈독을 들일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수위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를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일’이라고 규정하며 인수위를 강력 비판한 것이다.
여권에서도 인수위가 점령군 행세를 하는 것이라는 불쾌한 반응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일들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 잡기 식으로 나설 것”이라며 “점령군처럼 행세하면서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감사 등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이사회를 열어서 자리를 싹 바꾸려고 저러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前 국책硏 이사장 등 “사퇴 압박” 증언 文정부 ‘코드인사’ 전반 수사 확대되나
검찰이 고발장 접수 3년여 만에 전격적으로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재개한 가운데, 통일부·교육부·과기부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2019년 이미 관련자 조사를 어느 정도 마쳤고, 수사가 시작되자 비슷한 시기에 사퇴 압력을 받고 물러난 다른 공공기관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하나둘 추가되고 있어서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퇴한 기관장들의 증언까지 이어지면서 문재인정부 ‘코드인사’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검사 최형원)는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전 이사장과 교육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전직 이사장 A씨를 2019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손 전 이사장과 A씨 모두 임기를 1년여 남긴 2017년 8월 직책에서 물러났다.
손 전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천해성 당시 통일부 차관과 통일부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정권이 바뀌게 되면 기관장들이 사표를 내고 새 정부에 부담을 안 주는 것이 관례니까 알아서 사표를 제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제가 받아들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도 “2017년 대선이 끝나고 1∼2개월 뒤에 교육부 국장과 과장이 찾아왔고, 2∼3주 뒤에는 과장이 혼자 찾아와 ‘사표를 갖고 와야겠다’는 얘기를 직원을 통해 전달했다”며 사퇴 압력을 받은 정황을 밝혔다.
과기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해당 의혹은 과기부가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등 산하기관장 7명에게 사퇴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9년 의혹을 제기하며 “과기부 산하 63개 공공기관장 중에서 12명이 문재인정부 들어와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전부 중도 사퇴를 했다”며 “중도 사퇴한 배경에는 과기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찍어내기 감사, 임기 도중에 사퇴 압박을 하기 위한 감사라는 의혹이 짙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과기부 산하 전직 공공기관장 B씨도 “2017년 말 과기부의 압박으로 임기 중 사표를 냈다”며 사임 무효 소송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은 2019년 3월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며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국책연구기관장·정부산하기관장들이 문재인정부 초기에 강압적으로 밀려났다”며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등 11명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3년 만인 지난 25일 산업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관련 수사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