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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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몰래 설치한 카메라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 [알아야 보이는 법(法)]

회사원 A 등은 회사에 대한 비판기사를 쓴 인터넷 언론사 기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담기 위해 식당주인 몰래 음식점에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쟁점은 A씨 등이 주인 허락을 받고 식당에 들어갔더라도 주인이 목적(카메라 설치)을 알았다면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는 가운데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 입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1심은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유죄로 판단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이들이 주인의 의사에 반해 식당에 침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기자와의 대화를 녹음 및 녹화한 행위도 통신비밀 보호법을 위반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음식점에서 상대방과의 대화를 촬영하기 위해 식당주인 허락 없이 카메라를 설치한 행위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2017도18272)”고 판단했습니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거침입죄에서 규정하는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행위자가 범죄 등을 목적으로 음식점에 출입했거나, 영업주가 행위자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에 비추어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로써 주인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은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판결 후 25년 만에 새로운 판례가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에는 거주자나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출입하면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데려온 아내가 부정행위를 했다면 “남편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 즉 남편이 알았다면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83도685 판결 등).

 

초원복집 사건도 마찬가지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를 1주일 앞두고 부산의 음식점에서 기관장 회의가 있었는데, 당시 야당 후보 측에서 음식점에 미리 도청장치를 설치해 확보한 대화내용을 폭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도청장치 설치를 위해 음식점에 들어갔던 야당 후보 측 관련자에 법원은 “복집 주인이 출입을 승낙한 것은 맞지만 도청의 의도를 알았다면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주거침입죄로 처벌했습니다(대법원 95도2674 판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주거침입죄의 침입에 해당하는지는 ‘거주자의 주관적 의사’가 아니라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그 요지입니다. 즉 출입 당시 행위가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이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으면서 이때 거주자 의사는 여러 요소와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의 변경은 과거의 확정판결에는 영향이 없고, 이후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바른 김추 변호사 chu.kim@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