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여성이 흉기에 찔린 사건 현장에서 벗어나기 바빴다. 이들은 테이저건과 삼단봉 등으로 무장했지만 A(49)씨의 범행을 제지하기는 커녕 뒷걸음질쳤다. 앞서 부실 대응에 “트라우마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여성 경찰관의 해명은 거짓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당시 남성 경찰관에게 A씨가 피해자의 목을 칼로 찌르는 장면을 재연한 게 폐쇄회로(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피해자 측은 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허가로 확보한 지난해 11월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의 현장 CCTV 영상을 공개했다. 화면을 보면 당일 오후 5시4분쯤 이 빌라 4층에 사는 A씨는 아래층의 40대 여성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남녀 경찰관 2명은 해당 빌라에 도착했고, B씨의 남편이 3층에서 내려와 1층 현관문을 열어줬다. 잠시 뒤 남성 경찰관이 B씨 남편을 데리고 빌라 1층 밖으로 나갔다.
A씨의 범행은 여성 경찰관이 3층에 남아 B씨와 그의 20대 딸로부터 피해 사실을 듣던 중 이뤄졌다. 여성 경찰관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도 현장을 이탈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빌라 밖에서 B씨 남편과 함께 있던 남성 경찰관은 비명소리에 현관문 앞으로 뛰어와 다급하게 내부로 들어섰다.
이어 2층에 올라가다가 급히 내려오는 여성 경찰관과 마주쳤고 B씨 남편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남성 경찰관은 뒤따라가지 않고 여성 경찰관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두 경찰관은 자동 현관문이 닫혀버린 상태에서 계속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오후 5시6분쯤 건물 밖에서 여성과 남성 경찰관은 각각 테이저건, 삼단봉을 꺼내 들기도 했다. 여성 경찰관은 이 과정에서 A씨가 B씨의 목에 칼을 찌르는 장면을 2차례 재연하며 범행 장면을 설명했다. 피해자 측은 “트라우마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전 순경의 변명은 거짓말”이라고 꼬집었다.
경찰관들이 빌라 안으로 다시 진입한 시간은 오후 5시7분쯤이다. 현장을 벗어난 지 3분가량 흘렀다. 그리고 오후 5시11분쯤 빌라 3층에서 A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흉기에 목을 찔린 B씨는 의식을 잃었고 뇌경색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피해자 측은 “(B씨 남편이) 범인을 기절시킨 뒤 경찰관들이 나타나 연행했다고 한다”면서 “이들이 범인을 데리고 나가는데 1분30초 정도가 걸리는데 중간에 비어 있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측은 경찰관들이 빌라에 재진입한 이후에도 수십초 이상 2∼3층 사이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여성 경찰관이 착용했던 ‘보디캠(body cam)’ 영상을 스스로 지웠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현장에 출동했던 순경은 자체 감찰조사를 받은 뒤 보디캠 영상을 삭제했다”고 알렸다. 감찰에서 “보디캠 용량이 꽉 차 있어서 그랬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부실 대응을 감추려고 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피해자 측은 “모든 순간이 촬영돼 있을 텐데 영상을 삭제하는 바람에 진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A씨는 B씨 등 일가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