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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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희생자 더 많다”… 러 민간인 집단학살 정황 추가 발견

부차 인근 숲에서 시신 또 나와
“다른 도시서 학살규모 더 클수도
수천명 살해하고 여성 성폭행
국제사회, 대량학살 인정할 것”

바이든 “충격적… 러 제재 강화”
韓외교부 “명백한 국제법 위반”
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북서부 도시 부차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부차=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간인 집단학살 정황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방탄복을 입고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소도시 부차를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외신을 향해 “이는 전쟁범죄이며 국제사회에서 제노사이드(대량학살)로 인정될 것”이라며 “그들(러시아)이 자행한 짓을 목격한 현 상황에서 대화는 어렵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영상 연설에서 부차에서 민간인 최소 300여명이 학살됐으며 “보로댠카와 다른 탈환된 도시의 희생자 수가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팔다리 절단 등 고문을 자행한 것은 물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5일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공개 조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민간인 집단학살 증거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모토이진 마을의 이장과 일가족은 우크라이나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BBC는 보도했다. 이들은 숲 가장자리에 몸이 반쯤 묻혀 있었고, 손과 얼굴 등은 흙 사이로 알아볼 수 있게 남겨져 있었다. 러시아군 점령 시기에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등장하는 등 민간인 학살을 부인하는 러시아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위성사진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학살이 우크라이나 측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서부 도시 부차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살해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부차=AP뉴시스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조 바이든(사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이 사람(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잔인하고 부차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 충격적이며, 모두가 그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을 거듭 ‘전범’으로 규정짓고 “러시아에 더 많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부차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과 관련해 “잔혹 행위”로 규탄하며 대러 신규 제재를 논의할 것이라고 AFP 통신이 전했다. EU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군이 저지른 것으로 보고된 잔혹 행위를 최대한 강력히 규탄한다”며 “긴급히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대한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전시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정부는 독립적인 조사를 통한 효과적인 책임 규명이 중요하다는 유엔사무총장의 성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7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나토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부차에서 이뤄진 민간인 대량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부차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우크라이나 측의 민간인 학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라며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제사회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병욱·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