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결혼이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실을 개강했다. 2, 3단계 참가자는 온라인 수업을 요청했고 1단계는 절반 이상이 센터에 와서 수업을 받겠다고 했다. 그녀들이 삼삼오오 센터로 왔다. 그녀들은 차분하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우리 센터가 2007년부터 서울 구로구에서 한국어교실을 운영했는데, 그간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꽉 찬 생동’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쏟아지는 날렵한 동남아 언어와 탄력 있는 중국어 음색은 날마다 정신을 일깨웠고 공간 구석구석을 흔들어댔다. 20대 초반에, 단신으로, 한국에 시집온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생존을 위한 거라면 자국인과 나누는 모국어는 그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쏟아 내는 것이라 에너지가 남달랐다.
5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명은 시부모 손에 이끌려 한국어교실에 등록하러 왔다. 길눈이 트일 때까지 시부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부하러 다니는 여성들이 편치만은 않아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먼저, 등록하러 오는 인원이 줄었다. 대부분 남편과 같이 온다. 결혼중개업 관리에 관한 법률도 개선됐고 이를 거치지 않는 연애결혼도 증가해서인지 여성들은 예전보다 나이가 많아졌고 남편들은 젊어졌다. 평균 15세를 웃돌던 부부 연령 차이가 6, 7세로 줄었다. 간간이 둘만의 소통언어가 있는 이들도 있다. 최근 참가자들에겐 모국어로 풀어야 할 갈증이 조금은 가신 것 같다. 다행이다.
그래도 그때 한국어를 배웠던 여성들이 이제 어엿한 학부모가 되었다. 캄보디아 자조모임 참가자에게 “큰애 올해 학교 가죠?” 했더니 올해 1학년 들어갔고 나 말고 누구누구네 아이도 다 학교에 갔다며 이제 시작이란다. 친구들은 한국어 많이 늘었느냐고 했더니 “남편이 한마디 하면 우리도 열 마디 한다”며 깔깔 웃는다. 유쾌한 학부모가 된 그녀들이 대견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이렇게 열 마디 할 수 있도록 안전한 말 상대가 돼 준 남편들이 고마웠다. 걱정에 압도되는 가족들도 있다. 행여 ‘나쁜 정보’에 노출되거나 서툴게 대응할까 봐 일일이 통제하려 든다. 한국어가 늘어서 의사 표현이 발전하면 사람이 변했다고 불안해한다. 말이 안 돼 참았던 말 겨우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말이다. 그들의 불안이 기우라고 장담할 순 없으나 불안에 매이기보다 마음 편히 궁금해하길 권장한다. 앞으로 무슨 이야길 하게 될까? 어떤 일을 맡겨 볼까? 호기심을 가져 보시라. 서툰 언어 속에는 말대꾸도 가려졌으나 능력도 가려 있으니까.
내가 코로나19에 확진돼서 자가격리를 마치고 왔더니 지은씨가 인사를 했다. 괜찮느냐고, 자기도 걸렸고 아이도 걸렸고 남편과 시아버지도 다 걸렸다고, 한 건물 2, 3층에 사는데 난리였다고, 그래도 시아버지가 수월하게 넘어가 다행이라고 했다. 몸조리 잘 하라며 나를 챙겼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리 다정한 말을 건네는 지은씨도 1학년 아이를 둔 동남아 출신 결혼이민여성이다. 호기심으로 기다려 준 그녀들은 지금 살림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학부모도 되었다. 유쾌하고 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