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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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대사 "한달 만에 키예프→키이우 바뀌어… 놀랍다"

11일 젤렌스키 화상연설 앞두고 한국인에 ‘감사’
"러시아 상대 여론전에서 완벽한 승리" 평가도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연합뉴스

우리 외교부가 러시아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위해 그간 러시아식으로 표기해 온 우크라이나 지명을 우크라이나식으로 바꾼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달 3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1개월여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를 기존의 ‘키예프’라고 부르는 이는 사라지고 모두가 ‘키이우’라는 이름에 익숙해졌다. 오는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연설이 예고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측이 한국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도시명을 러시아식 표기법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고 적용한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놀랍게도 한 달 만에 모든 곳에서 ‘키예프’가 아닌 ‘키이우’로 표기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달 3일 “앞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지명에 대해 우크라이나식 표기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지 열흘도 안 된 시점이었다. 전쟁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이를 감안한 조치로 풀이됐다. 이후 국립국어원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외심위)를 통해 우크라이나어 지명 14건의 한글 표기를 확정했다.

 

포노마렌코 대사는 당시 외심위가 내놓은 ‘우크라이나어 심의 결과’ 자료 사진도 SNS에 올렸다. 키예프를 키이우로, 하리코프를 하르키우로, 드네프르강(江)을 드니프로강으로 각각 변경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7일 SNS에 올린 게시물. 과거 러시아식으로 표기해 온 우크라이나 지명이 순식간에 우크라이나식으로 바뀐 것에 대해 그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SNS 캡처

개전과 거의 동시에 한국에 부임한 포노마렌코 대사는 애초 우크라이나·러시아 갈등에 별 관심이 없던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규탄하게 만드는 여론전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예프에서 키이우로 표기가 바뀌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그는 SNS 글에서 이를 “우리가 거둔 작은 승리”라고 규정했다. 비록 세계 2위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의 힘 앞에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 위로가 된다고 고백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노마렌코 대사 앞에는 이제 더 중요한 과제가 놓여 있다. 다음주 예정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화상연설을 반드시 성공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지난달 영국, 캐나다, 미국 등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국 의회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고도 세계 10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에 주목하며 우크라이나의 ‘본보기’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주선한 이번 화상연설은 오는 11일 오후 5시 국회도서관에서 우리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열린다.

지난달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호주 의회에서 화상연설을 하는 모습. 연설 직전과 직후 호주 의원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SNS 캡처

앞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포노마렌코 대사는 어떤 내용이 연설문에 포함될지 넌지시 내비친 바 있다. 그는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은 역사가 있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두 나라 역사에 대한 비교가 연설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