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스스로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세심하게 곱씹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나 역시 ‘4월 9일은 서점에 가고, 친구 ××를 만났다’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만 기억하지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이나 했던 일을 되새기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한 달 전쯤 코로나19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는 달랐다. 당시 몸살 감기와 비슷한 증상에 선별검사소를 찾아가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키트에 두 줄이 선명했다.
그전까지는 ‘슈퍼 항체’라도 보유한 듯 코로나19 감염을 남의 이야기로 여겼는데 양성이 나오자 당혹스러웠다. 어린 딸 때문에라도 방역수칙을 나름 철저히 준수했는데 소용없게 된 것이다. 확진자가 되자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취재 등과 관련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보니 나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전파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진 판정 전 함께 식사하거나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대로 연락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검사를 권유했다. ‘제발 음성이 나오길’ 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단단히 폐를 끼친 기분이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놓친 사람은 없는지 시간을 조각조각 나눠 되새겨 봤다. 어차피 격리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라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영화 필름처럼 되돌려 볼 시간은 충분했다.
기억을 구체화할수록 신기하게도 ‘정말 많은 사람과 하루를 보내는구나’라고 여겨질 만큼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처럼 일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독특한 경험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우리가 ‘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나의 ‘기억 저장고’에서 도드라지지 않을 뿐 많은 사람이 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와 그들은 수도 없이 영향을 주거나 받는 관계였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다 보니 내 의지로 쉽게 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파되는 메커니즘과 같다. 이렇게 연결돼 있으니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든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진으로 걱정과 불편이 적지 않았지만 나의 일상과 그 울타리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 기회를 갖게 해줘 도움이 됐다. 마음가짐도 살짝 바뀌었다. 조금 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고 있다.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처럼 사람도 혼자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가족과 친인척, 친구, 직장 동료 등 비교적 가까운 사이는 물론이고 누군가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당연히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꿈꾼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쁜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