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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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와 너무 친해" 비난에 獨 대통령 "우크라 지원에 최선"

가스관 놓고 갈라진 서방… “러시아 웃었을 것”
"푸틴, 20년여 만에 사람 완전히 바뀌어" 토로
2017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스크바=AP연합뉴스

“노르트스트림2는 분명히 실수였습니다. 우리는 에너지 분야 협력을 위해 러시아와 대화를 간절히 원했는데, 정작 푸틴은 우리의 이 열망을 나약함의 징조로 해석한 것 같아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사업 추진은 완전한 잘못이었다고 거듭 시인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해선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유럽연합(EU)에서 최대 규모 경제력을 지닌 독일이 정작 우크라이나 지원에선 가장 소극적이란 비난을 받는 점을 의식한 듯 “독일은 우크라이나 편”이라며 키이우 방문 가능성도 내비쳤다.

 

◆가스관 놓고 갈라진 서방… "러시아 웃었을 것"

 

11일 독일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독일 잡지 ‘슈피겔’과 인터뷰를 했다. 노르트스트림2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분명한 실수”라고 단언한 그는 “거액을 쏟아부은 프로젝트가 결국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거래 성사에 매달린 우리의 행동이 동유럽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서 독일의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 이어 또 노르트스트림2 관련 정책을 ‘실책’으로 명백히 규정한 셈이다.

 

8일(현지시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슈피겔’ 인터뷰 모습. 독일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

사실 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일부는 독일이 노르트스트림2를 추진할 때부터 진작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7월 퇴임을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철회하라”는 거센 압박을 받았으나 독일의 에너지 수급상 필요성을 들어 끝내 이를 거절했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 때 이 대목에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메르켈 전 총리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의견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올라프 숄츠 현 독일 총리는 결국 노르트스트림2 폐쇄를 결정했다. 메르켈 전 총리가 오판을 저질렀음이 확인된 셈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역시 미국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집착하는 메르켈 정부를 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 동맹은 나약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7월 미국 백악관에서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2 사업 포기를 종용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푸틴, 20년여 만에 사람 완전히 바뀌어" 토로

 

독일 국가원수가 되기 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오랫동안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그릇된 ‘유화정책’에는 그의 책임도 상당 부분 있다는 뜻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2001년 모스크바에서 처음 푸틴을 만났을 때만 해도 ‘러시아는 독일과 유럽 편에 서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한 푸틴의 메시지를 믿었다”며 결과적으로 푸틴에 관한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는 “2001년의 푸틴과 2022년의 푸틴은 완전히 다르다”고도 했다.

 

부차 학살이 알려진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메르켈을 이 현장으로 초청하고 싶다”며 독일 정부를 향해 독설을 날렸다. 독일이 오랫동안 러시아와 친하게 지냈고 심지어 올해 2월 전쟁 발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란 점을 질타한 것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부차 학살에 관해 “사진을 보니 끔찍하다. 견딜 수가 없다. 가슴이 찢어진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엄청나게 화가 나고 또 슬프다”고도 했다.

 

서방 주요국 가운데 미국과 더불어 러시아 제재 및 우크라이나 원조에 가장 적극적인 영국은 최근 보리스 존슨 총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키이우를 직접 방문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격려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만간 키이우로 갈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즉답을 피한 채 “앞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지원에는 키이우 방문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