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가 1년6개월 전 추진한 공시지가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에 재산세 절반을 감경해주는 내용의 조례안이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를 근거로 재산세율을 감경하는 것은 지방세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로 후보자들이 재산세 감면 공약을 꺼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14일 서초구에 따르면 2020년 9월 조은희 당시 서초구청장(현 국회의원)과 구의회는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재산세율을 50% 범위 내에서 감면할 수 있다’는 지방세법 111조 3항에 따라 당해 공시지가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의 재산세를 50% 감경해주는 내용의 조례안을 의결하고 공포했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로 재산세가 급등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어려움을 완화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이 이끌던 서울시는 이를 반대했다. 주택 소유조건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고, 다른 24개 자치구와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시는 해당 조례에 대한 무효확인소송 및 집행정지신청을 제기했고, 이후 서초구의 재산세 감경 절차는 전면 중단됐다. 그 사이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1주택자의 재산세율을 감경하는 지방세법이 개정되면서 정책은 서초구의 취지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됐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재산세 관련 소송을 취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 1부는 이날 서울시의 조례안 의결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하며 서초구의 지방재정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례를 근거로 감경하는 세율의 적용 대상을 재해 피해자 등 일정 범위로 한정하는 것은 지방세법의 위임범위 내로 허용된다”며 “지방세법 111조 3항의 취지는 정부 승인이나 허가 없이 지자체의 자치법인 조례로 재산세 표준세율을 가감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자체의 과세자주권을 보장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자체의 조례안이 감경 세율 적용 대상을 한정하더라도 지방세법의 위임 범위 한계를 넘어 무효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초구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시 멈췄던 환급 절차를 신속히 이행하기로 했다. 구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재정권 확립에 한걸음 나아간 판결로 적극 환영한다”며 “서초구는 판결 결과에 따라 즉각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환급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에 따르면 예상 재산세 환급액은 약 35억원으로, 3만명에게 1인당 평균 10만원선의 환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조 의원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결과가 늦어지며 나타난 행정적인 소모와 정작 시민이 힘든 코로나 시국에 바로 도움을 드리기 어려웠던 점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만시지탄이지만 주민분들께 재산세 감경투쟁 승리 소식을 전해드려 기쁘고 뜻깊다”고 말했다.
일부 서울 자치구에서는 이번 판결 이후 ‘포퓰리즘 성격’의 재산세 감면 공약이 나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성 구로구청장은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강남구도 60% 수준에 그치는데, 당시 서초구의 재산세 감면 정책은 재정적 여유보다 다소 정치적인 판단에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며 “서울이 넓은 곳도 아니고 구청장협의회 차원에서도 복지대타협위원회를 둬 복지정책에 차등을 두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 자칫 세금감면이 경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다른 구청장도 “특정 자치구민에만 재산세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선거를 앞두고 뜬금없이 세금감면 공약이 나올까 걱정”이라고 꼬집었다.